토요타의 '후불 옵션' 전략, 자동차를 살 때가 아닌 산 후에 돈을 쓰게 만든다?
토요타의 '후불 옵션' 전략, 자동차를 살 때가 아닌 산 후에 돈을 쓰게 만든다?
토요타가 자동차를 '팔고 끝내는' 비즈니스에서 '팔고 나서도 계속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로 대전환을 선언했습니다. 닛케이 신문에 따르면, 토요타자동차는 앞으로 모든 차종에서 출고 후에도 안전 장치 등 하드웨어 옵션을 추가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확대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단순한 서비스 확장이 아닌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는 이유, 그리고 이 전략이 한국 자동차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겠습니다.
토요타의 '팔고 끝'에서 '팔고 시작'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전략
일본 자동차 산업의 대표주자 토요타가 큰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2025년 가을 이후에 출시하는 모든 신차부터 출고 후에도 안전장치와 같은 주요 옵션을 추가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 단계부터 준비한다는 계획입니다8. 가을에 출시될 신형 RAV4를 시작으로 점차 전 차종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기존의 자동차 산업에서는, 메이커 옵션이라 불리는 제조 공정에서 설치되는 장비들은 차량 제조 시에만 설치가 가능했습니다2. 출고 후에는 넣고 싶어도 넣을 수 없었죠. '당신이 선택한 차량 사양이 당신의 10년 운전 생활을 결정한다'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토요타는 이 고정관념을 깨겠다는 것입니다.
왜 토요타는 이런 전략을 선택했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돈을 더 벌기 위해서입니다. 일본은 인구 감소로 인해 자동차 시장이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습니다78. 판매 대수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으니, 한 대당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죠. 마치 넷플릭스나 유튜브 프리미엄처럼, 자동차도 '기본형'만 사고 필요할 때마다 기능을 추가해 돈을 지불하는 시대가 오는 겁니다.
테슬라가 이미 시작한 혁명, 토요타도 따라가나?
사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테슬라가 이미 선보이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차를 팔고 나서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같은 부가 기능을 유료로 제공하며 추가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419. 이것이 바로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의 핵심 개념입니다.
테슬라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미 판매된 차량의 ECU(Electronic Control Unit)를 최신 버전으로 무상 교체해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4. 이는 그들의 자율주행 기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이에 비하면 토요타의 전략은 좀 더 '하드웨어' 중심적입니다. 고성능 카메라나 레이더 센서와 같은 물리적인 장치를 나중에 추가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죠18. 말하자면 토요타는 '하드웨어 정의 차량(Hardware Defined Vehicle)'으로 접근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중에 필요하게 될 하드웨어를 위해 미리 배선을 깔아두는 식이죠.
일본의 위기가 한국의 미래다, 왜 이 전략이 한국 자동차 산업에도 중요한가?
일본이 지금 겪고 있는 인구 감소와 자동차 시장 축소는 한국도 피할 수 없는 미래입니다.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일본보다도 낮습니다. 자동차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한국으로서는 토요타의 이 전략이 단순한 '일본 기업의 소식'이 아닌 '우리 미래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이미 커넥티드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에 투자하고 있지만, 토요타처럼 '하드웨어 후설치' 전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전략이 토요타에게 성공적이라면,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도 비슷한 모델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런 변화가 자동차 업계의 수익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동차는 '팔고 끝'이었지만, 앞으로는 스마트폰처럼 '판 후에 시작'되는 비즈니스가 될 것입니다. 구독 경제, 서비스형 모빌리티(MaaS)로 진화하는 것이죠.
소비자에게는 축복일까, 저주일까?
이런 변화가 소비자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장단점이 분명합니다.
장점:
- 초기 구매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필요한 기능만 선택적으로 구매 가능하니까요.
-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3년 전에 산 차에도 최신 안전 기능을 추가할 수 있죠.
- 필요에 따라 기능을 임시로 활성화할 수도 있습니다. 장거리 여행 때만 고급 주행 보조 기능을 구독하는 식으로요.
단점:
-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수 있습니다. 월 구독료가 쌓이면 결국 한방에 사는 것보다 비싸질 수 있어요.
- 자동차 회사의 '지갑 털기' 전략에 노출됩니다. "이 기능 쓰려면 월 9,900원만 더 내세요~"라는 유혹이 계속됩니다.
- 소프트웨어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해킹 위험도 증가합니다.
'짜여진' 미래 -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사실 자동차 업계의 이런 전환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인구는 줄고, 시장은 정체되고, 전기차 전환으로 기존의 수익원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아야 하니까요. 토요타의 전략은 이런 면에서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결국 이 전략이 여러 산업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소프트웨어 업계는 이미 영구 라이선스에서 구독 모델로 옮겨갔고, 미디어 산업도 소유에서 구독으로 전환했습니다. 이제 자동차 산업도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전환의 진정한 승자는 결국 빅데이터와 최첨단 기술을 갖춘 기업들일 것입니다. 토요타가 진정으로 성공하려면 단순히 하드웨어 추가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한 가치 창출 능력이 필요합니다. 현 상황에서는 테슬라나 구글과 같은 테크 기업들이 이런 면에서 앞서 있죠.
결국 토요타의 이 전략은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의 소프트웨어화'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몸부림치는 토요타의 모습이, 마치 스마트폰 시대에 피처폰을 고수하던 노키아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토요타는 노키아보다는 훨씬 현명할 것이라고 믿지만요.
자동차 산업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동차 업계도 토요타의 이번 전략 전환을 주시하고, 단순히 '따라 하기'가 아닌 한 단계 더 앞선 전략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질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