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구리 관세 위협이 만들어낸 '상하이 프리미엄' 광풍
트럼프의 구리 관세 위협이 만들어낸 '상하이 프리미엄' 광풍
일본 니케이신문이 지난 5월 22일 보도한 구리 시장의 이상 현상이 전 세계 제조업계를 뒤흔들고 있다1.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리 관세 부과 시사로 인해 발생한 '상하이 프리미엄' 현상은 단순한 상품 가격 변동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이 현상은 미국의 급작스러운 구리 수입 증가로 인해 중국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며 구리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으며, 결과적으로 전 세계 제조업 비용 상승이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럼프의 232조 카드가 만들어낸 시장 혼란
트럼프 대통령이 2월 25일 1962년 통상확대법 232조에 근거해 구리 수입의 국가안보상 영향을 조사하도록 상무부에 지시한 것이 모든 혼란의 시작이었다5614. 232조는 특정 제품의 수입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한다고 상무장관이 판단할 경우 대통령에게 추가 관세 등의 조치를 발동할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이다6.
미국의 구리 수입 의존도는 1991년 거의 0%에서 2024년 45%까지 급증했다614. 이러한 대외 의존도 증가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관세 발동 전에 먼저 확보해두려는 미국 업계의 선제적 움직임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의 구리 재고는 5월 20일 기준 약 15만 7천 톤으로 약 6년 8개월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19.
중국의 고민, 한국의 기회
흥미로운 점은 세계 최대 구리 소비국인 중국이 오히려 구리 부족 상황에 직면했다는 사실이다1. 상하이선물거래소(SHFE)의 구리 재고는 5월 상순까지 2개월간 70% 가량 감소했다18.
이는 한국 제조업계에게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변화다. 한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구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7, 특히 조선업과 전자산업에서 구리는 필수 소재다. 중국의 구리 확보 어려움은 역설적으로 한국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상하이 프리미엄의 실체
현재 중국의 구리 수입가격은 런던금속거래소(LME) 가격보다 톤당 90달러 이상 높은 프리미엄을 보이고 있다110. 이는 약 1년 5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3월에는 중국의 구리 프리미엄이 80달러 근처까지 급등하기도 했다10.
이런 프리미엄 확대는 단순히 중국 경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물리적인 재고 부족 때문이라는 점이 핵심이다1. 마켓 리스크 어드바이저리의 신무라 나오히로 공동대표는 "실수요 측면이 아니라 재고 부족에 의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1.
알루미늄에서 본 미래 시나리오
이미 25%의 추가 관세를 3월에 발동한 알루미늄 시장이 구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좋은 사례다1.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알루미늄 할증료 연동 선물 가격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전 대비 약 80% 상승했다1.
반면 LME의 알루미늄 가격은 안정적이어서, 관세의 타격을 미국이 고스란히 감당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1. 이는 구리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 시대의 구리 전쟁
구리가 특별한 이유는 전기차 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31318. 전기차 1대에는 일반 차량보다 3배 많은 구리가 사용되며813, AI 데이터센터의 급증으로 2030년까지 연간 200만 톤의 구리 수요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3.
글로벌 인프라 자산운용사인 맥쿼리그룹과 에너지 컨설팅 업체 우드맥킨지는 2034년에 구리가 약 475만 톤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3. 이런 상황에서 관세로 인한 공급망 왜곡은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이유
한국은 구리 관련해서 일본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 2018년 기준 일본의 구리 광석 수입량은 129만 3천 톤으로, 칠레, 페루, 인도네시아, 캐나다, 호주로부터의 수입이 90%를 차지했다7. 한국도 마찬가지로 구리 원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 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특히 한국의 조선업계와 전자업계는 구리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중국의 구리 확보 어려움은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중국 기업들이 높은 원자재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의 상대적 경쟁력이 향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논평: 경제전쟁의 새로운 양상
도쿄에서 이런 뉴스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점은, 미중 갈등이 이제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무역전쟁이 관세율 높이기 게임이었다면, 지금은 핵심 소재의 공급망 자체를 무기화하는 단계로 진화했다.
트럼프의 이런 전략은 겉으로는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제조업체들이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마치 자신의 발등을 찍는 격이지만, 동시에 중국에게는 더 큰 타격을 주는 묘수이기도 하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런 혼란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야 한다. 중국의 제조업 비용 상승은 한국 기업들에게는 분명 호재가 될 수 있다. 다만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