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집사의 성경묵상 – 마태복음 7장, 인생 만렙으로 가는 최종 지침서
"조집사의 성경묵상"입니다.
인터넷 댓글 창부터 직장 회의실까지, 우리는 왜 그렇게 남의 티끌에는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할까요? 모두가 비평가이고 심판관이 된 시대, ‘내로남불’은 이제 흔한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마태복음 7장은, 바로 이 지긋지긋한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최종 지침서와도 같습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우리의 시선을 남에게서 나 자신에게로 돌리고, 삶의 근본을 바꾸어 놓는지 지금부터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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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1: 당신의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마 7:1-6)
첫 번째 가르침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행위는 단순히 도덕적 문제를 넘어, 우리 자신의 영적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리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서서히 파괴하는 독과 같다고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1절에서 5절은 직설적입니다.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예수님은 여기서 ‘네 눈 속의 들보’라는 강력한 비유를 드십니다. 프로젝트 마감일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놓고 하루 종일 주식창만 들여다보던 김대리가, 동료 박주임 보고서에서 맞춤법 틀린 거 하나 찾아내서 부장님한테 달려가는 꼴이죠. ‘이래서 요즘 애들은 기본이 안됐다’면서요. 자기 눈의 대들보는 ‘성장을 위한 투자’고 남의 눈의 티끌은 ‘업무 태만’이 되는 이 놀라운 자기합리화, 정말 익숙하지 않습니까?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 눈이 잘 보여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 (마 7:5)
그런데 바로 여기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더 깊어집니다. 6절에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죠.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아라." 예수님은 방금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곧바로 누구를 '개'나 '돼지'로 비유하며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모순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심판의 '동기'와 '목적'에 있습니다. 앞선 심판은 자신의 들보를 가리기 위한 정죄(condemnation)이지만, 뒤의 분별(discernment)은 진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지혜입니다. 악성 댓글러와 밤새도록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것처럼, 가치 있는 진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이들에게 에너지를 쏟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들은 당신의 진심을 물어뜯고 상처만 남길 뿐입니다.
결국 이 단락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하나는 나를 향한 정직한 자기성찰, 다른 하나는 타인을 향한 지혜로운 분별력입니다. 이 두 가지 시선을 회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된 관계를 맺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온전히 받아낼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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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2: 하늘의 아버지를 해킹하는 치트키 (마 7:7-12)
이제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 원칙, 인생의 ‘치트키’와도 같은 비결을 알려주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행위가 단순한 요청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근본적인 태도이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서 11절의 약속은 파격적입니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마 7:7)
이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리스크는 제로, 리턴은 무한대’인 신앙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의 논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11절) 자녀가 빵을 달라는데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부모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응답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심어줍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약속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해답이 바로 12절의 ‘황금률’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여기서 핵심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대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결핍과 경쟁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여유와 담대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삶이 황금률로 이어지는 원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덧붙이십니다.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이 한마디는 이 황금률이 단순한 윤리 강령을 넘어,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진리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이렇게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외면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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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3: 넓은 길 vs. 좁은 길, 당신의 내비게이션은? (마 7:13-14)
예수님은 이제 우리 앞에 두 개의 문과 두 개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이 ‘좁은 문’의 비유는 단순히 고난을 감수하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대중적인 가치와 유행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삶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진정한 가치를 분별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은 널찍합니다(13절). 왜 다들 넓은 길로 갈까요? 간단합니다. 그 길이 편하고,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기 좋고, 무엇보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공포를 잠재워주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저 군중 속에 묻어가는 것만큼 안락한 마약은 없죠.
반면,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습니다(14절). 이 길은 장기적인 가치를 위해 꾸준히 자신을 연단하는 장인의 길,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 소신을 지키며 ‘예’라고 말하는 용기 있는 삶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이 말은 진정한 가치는 본질적으로 희소성을 가지며,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남들이 다 가는 편한 길에 안주해서는 결코 생명의 길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는 신앙생활뿐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깊은 통찰입니다.
그렇다면 어렵게 좁은 길을 선택했다면, 그 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시 그 길 위에도 가짜 안내자가 있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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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4: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법: 열매를 보라 (마 7:15-23)
좁은 길에 들어선 우리에게 예수님은 생존에 필수적인 기술을 알려주십니다. 바로 말과 행동이 다른 ‘거짓 예언자’들을 분별하는 법입니다. 예수님이 제시한 기준은 놀라울 만큼 명쾌하고 실용적입니다.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야 한다. (마 7:15-16)
‘양의 옷을 입은 이리’는 오늘날에도 넘쳐납니다. 그럴듯한 말로 신도들을 현혹하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 선한 영향력을 내세우지만 뒤로는 온갖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는 인플루언서, 공의와 정의를 외치지만 사리사욕을 채우는 정치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따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본질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명확한 인과관계입니다. 결국 그들의 삶의 ‘열매’가 그들의 정체를 드러낼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곧이어 더 충격적인 선언이 이어집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마 7:21)
가장 무서운 점은 이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22절) 라고 항변합니다. 겉보기에는 최고의 '열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가 아니라 중심 동기, 즉 '불법을 행하는'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십니다. 유창한 종교적 언어, 화려한 사역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삶’ 그 자체가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유일한 시금석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화려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존재' 그 자체에 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자, 이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법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진짜 가르침 위에 우리는 인생이라는 집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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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5: 당신의 인생은 모래성인가, 요새인가? (마 7:24-29)
마지막 비유는 마태복음 5장부터 길게 이어진 산상수훈 전체의 장엄한 결론입니다. 이 비유는 ‘듣기만 하는 지식’과 ‘행함으로 이어지는 지혜’의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주며, 이것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궁극적인 기준이 됨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두 종류의 건축가를 등장시킵니다. 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 반석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 모래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삶’입니다.
폭풍이 오기 전까지 두 집은 겉보기엔 똑같았을 겁니다. 하나는 멋진 오션뷰를 자랑하는 모래 위의 저택이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두 집 모두 인생의 시련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비, 홍수, 바람은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경제 위기, 관계의 갈등, 갑작스러운 질병,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 피할 수 없는 고난들을 상징합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어떤 시련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초 위에 서 있느냐’**입니다. 위기는 기초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기초의 차이를 그저 '드러낼' 뿐입니다. 반석 위의 집은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버텼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의 집은 달랐습니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27절) 행함이라는 튼튼한 기초가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종교적 경력이나 사회적 성공을 쌓아 올려도 인생의 풍파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이 모든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이 하던 공허한 지식 전달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삶의 근본을 뒤흔드는 ‘권위 있는 새 가르침’(29절)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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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마태복음 7장의 모든 가르침은 결국 우리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듣고, 무엇을 행할 것입니까?
조집사의 성경묵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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