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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집사의 성경묵상/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4장 - 바울은 왜 방언에 브레이크를 걸었나: 영적 은사의 본질과 가성비

by fastcho 2026.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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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왜 방언에 브레이크를 걸었나:
영적 은사의 본질과 가성비

기독교 최고의 지성인 바울이 성령 충만의 상징이었던 '방언'에 급제동을 건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14장을 통해 영적 은사의 진정한 목적과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바울의 서늘하고도 기막힌 통찰을 파헤쳐 봅니다.
조집사의 성경묵상

약성경의 거의 절반을 집필하고, 역사상 그 누구보다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자부하는 바울. 그는 왜 초기 교회 교인들을 향해 예배 중 방언을 자제하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을까요? 도대체 왜 이 영적 끝판왕이 신비한 언어에 속도제한을 걸었는지 그 해답을 찾아 떠나봅니다.

EXECUTIVE SUMMARY
  • 바울은 방언보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예언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 알아들을 수 없는 영적 언어는 타인을 소외시키고 공동체의 소통을 단절시킵니다.
  • 모든 영적 은사와 예배의 최우선 기준은 공동체의 덕과 질서에 있습니다.
• • •

1. 영적 벤처기업 CEO 바울의 가성비 계산법

  • 고린도의 세속적 에너지가 교회 내 무분별한 은사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 방언은 하나님과의 1대1 비밀 통신으로 개인의 은혜에 머무릅니다.
  • 반면 예언은 다 함께 알아듣고 공동체를 세우는 광역 방송망과 같습니다.
조집사🙎🏻‍♂️
조집사의 성경묵상입니다. 어 신약성경의 거의 절반을 집필했고요, 역사상 그 누구보다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막 엄청나게 많이 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기독교 최고의 지성인이 있습니다.
👩🏻‍💼오집사
네, 바로 바울이죠.
조집사🙎🏻‍♂️
맞습니다. 그런데 이 바울이 초기 교회 교인들을 향해서 제발 예배 시간에는 방언 좀 그만해라. 웬만하면 입 좀 닫고 있어라. 이렇게 성령의 역사에 대놓고 브레이크를 걸어버립니다.
👩🏻‍💼오집사
아, 진짜 충격적인 선언이죠.
조집사🙎🏻‍♂️
네네. 도대체 왜 이 영적 끝판왕이 그 성령 충만의 상징 같았던 신비한 언어에 속도제한을 팍 걸었을까요? 오늘 고린도전서 14장이 그 서늘하고도 기막힌 이유를 폭로합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오집사
네, 바울이 참 얄미울 정도로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대목인데요. 고린도전서 14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약간, 어... 냉철한 벤처기업 CEO가 부서별 업무 가성비를 막 따지듯이 영적 은사들의 효율성을 줄 세우고 있어요.
조집사🙎🏻‍♂️
가성비요? 영적인 일에도 가성비를 따지나요?
👩🏻‍💼오집사
그럼요. 1절부터 아주 도발적인데, 은사를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열망하라고 아예 콕 집어서 말을 하거든요. 이게 당시 고린도라는 도시의 배경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 EDITOR'S INSIGHT : 고린도 교회의 배경

고대 고린도는 무역의 중심지이자 온갖 이방 종교가 융합된 항구 도시였습니다. 이 세속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교회 내부로까지 유입되면서, 성도들은 자신이 받은 영적 은사를 자랑하고 뽐내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조집사🙎🏻‍♂️
아 그 동네가 원래 좀 시끌벅적 했잖아요.
👩🏻‍💼오집사
맞아요. 이곳이 항구 도시이기도 하고 온갖 상업이랑 이방 종교가 막 뒤섞인, 요즘으로 치면 라스베이거스하고 실리콘밸리를 합쳐놓은 듯한 엄청난 욕망의 용광로였어요.
조집사🙎🏻‍♂️
와 라스베가스랑 실리콘밸리의 조합이라니 에너지가 장난 아니었겠네요.
👩🏻‍💼오집사
그렇죠. 그 에너지가 교회 안에도 그대로 들어와서,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각자의 영적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막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였던 거죠.
조집사🙎🏻‍♂️
아 그러니까 너도나도 나 은혜받았다 이러면서 자리 주장을 엄청 세우던 거군요.
👩🏻‍💼오집사
네, 그중에서도 특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막 쏟아내는 '방언'이라는 현상이 있었잖아요. 이게 일종의 최고급 영적 계급장처럼 여겨지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조집사🙎🏻‍♂️
아하, 그러니까 방언 한번 유창하게 쫙 뽑아줘야, 어 저 사람 영성 장난 아니네 하고 인정받는 그런 분위기였군요.
👩🏻‍💼오집사
맞아요. 완전 그런 거죠.
조집사🙎🏻‍♂️
그런데 2절을 보면 바울이 방언의 정체를 아주 명확하게 정의를 해버려요. 방언은 사람에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거다.
👩🏻‍💼오집사
네, 철저하게 하나님과 나 사이의 1대1 암호화된 직통 라인이라는 거죠.
조집사🙎🏻‍♂️
반면에 예언은 3절이랑 4절을 보면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이라고 딱 규정을 하거든요. 바울의 계산법이 되게 명확한 거 같아요.
👩🏻‍💼오집사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셨어요?
조집사🙎🏻‍♂️
나 혼자 은혜받고 끝나는 암호 통신망보다 다 같이 알아듣고 건덕, 그러니까 교회를 세우는 광역 방송망이 조직 관리 차원에서는 훨씬 가성비가 높다는 거 아닙니까?
👩🏻‍💼오집사
정확합니다. 그 고대 사회의 신비주의 종교들은 대부분 무아지경, 즉 엑스터시 상태에서 이성을 잃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막 내는 걸 접신의 최고 경지로 쳤거든요.
조집사🙎🏻‍♂️
아 뭔가 막 신들린 것처럼 으스스하게 막...
👩🏻‍💼오집사
네네, 고린도 교인들도 그 이방 문화의 뼈대가 은연중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나오는 방언을 엄청난 훈장으로 여겼던 거예요.
조집사🙎🏻‍♂️
아, 신에게서 직접 내려온 비밀스러운 언어를 구사하는 약간 엘리트 의식 같은 거였네요.
👩🏻‍💼오집사
바로 그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5절에서 그 자부심에 찬물을 확 끼얹어 버려요. 방언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너희가 예언하기를 원한다, 이렇게요.
• • •

2. 웅장한 소음 공해와 치명적인 정보 부재

  •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직장에서 외계어로 발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소리가 아무리 웅장해도 정보값이 제로라면 무의미한 소음일 뿐입니다.
  • 뜻을 알 수 없는 말은 타인을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고립시킵니다.
조집사🙎🏻‍♂️
나 홀로 영적인 포만감에 취해 있는 것보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게 낫다는 거군요. 이걸 현대 직장 생활로 끌고 오면 진짜 골 때리는 상황인 겁니다.
👩🏻‍💼오집사
직장 생활이요? 어떻게 비유가 될까요?
조집사🙎🏻‍♂️
시청자들께서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회사에 사활이 걸린 내년도 핵심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임원 회의실이에요.
👩🏻‍💼오집사
네, 엄청 무거운 자리네요.
조집사🙎🏻‍♂️
근데 한 핵심 인재가 되게 비장하게 일어나더니, 갑자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엘프어나 저기 안드로메다 외계어로 열정적인 PT를 시작하는 거예요.
👩🏻‍💼오집사
아, 진짜 끔찍한데요?
조집사🙎🏻‍♂️
본인은 며칠 밤을 새우며 준비했고 막 영감이 솟구쳐서 텐션이랑 성취감이 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걸 멍하니 듣고 있는 팀장이나 동료들은 속이 터지는 거 아닙니까?
👩🏻‍💼오집사
맞아요. 완전 복장 터지죠.
조집사🙎🏻‍♂️
9절에서 바울이 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셈이라고 아주 명치를 세게 때리는 게 바로 이 포인트잖아요.
👩🏻‍💼오집사
만약에 그 엘프어 PT를 본 사장이, "오 자네 그 무아지경의 열정과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신비로운 언어 능력에 감동했네." 이러면서 고과 A를 주면?
조집사🙎🏻‍♂️
그럼 그 회사는 바로 망하는 길로 가는 거죠.
👩🏻‍💼오집사
그렇죠.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이 이 답답한 상황을 악기에 빗대어서 기가 막히게 꼬집는 장면이 나와요.
조집사🙎🏻‍♂️
아 7절과 8절에 나오는 악기 비유 말씀하시는 거군요.
👩🏻‍💼오집사
네, 피리와 거문고 그리고 나팔 이야기가 나오죠. 생명 없는 악기조차 음표의 구분이 있어야 무슨 곡조인지 알 수 있는데, 하물며 전시 상황에서 나팔이 분명하지 않은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복을 입고 무기를 들겠냐고 막 따져 묻는 겁니다.
조집사🙎🏻‍♂️
와 이 나팔 비유 진짜 소름 돋게 현실적입니다.

"소리가 아무리 웅장하고 영적인 에코가 막 빵빵하게 들어가 있어도, 그 안에 담긴 정보값이 제로라면 그거는 웅장한 소음 공해라는 무서운 통찰인 거죠."

👩🏻‍💼오집사
소리가 아무리 웅장하고 영적인 에코가 막 빵빵하게 들어가 있어도, 그 안에 담긴 정보값이 제로라면 그거는 웅장한 소음 공해라는 무서운 통찰인 거죠.
조집사🙎🏻‍♂️
빗발치는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 한복판인데 부대의 운명을 쥔 나팔수가 갑자기 자기 필에 완전히 취해버린 거예요.
👩🏻‍💼오집사
아, 상상만 해도 아찔하네요.
조집사🙎🏻‍♂️
진격의 나팔을 불어야 할 타이밍에 눈을 지그시 감고 아련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재즈를 막 연주하기 시작한다고 시청자들께서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오집사
재즈요? 전시 상황에요?
조집사🙎🏻‍♂️
네, 보병들은 지금 당장 총검을 들고 돌격해야 하는지 아니면 참호 안에서 핑거스냅을 치면서 스윙 댄스를 춰야 하는지 대참사가 벌어지는 거잖아요.
👩🏻‍💼오집사
아, 진짜 그렇네요. 그 재즈 나팔수는 부대원들에게 적군보다 더 위험한 존재일 수 있는 거잖아요. 정보의 부재가 생존의 위협으로 직결되니까요.
조집사🙎🏻‍♂️
맞습니다. 그래서 11절이 그 핵심을 아주 정확하게 찌르더라고요.
👩🏻‍💼오집사
네, 내가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나는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딴 세상 사람이 되고 그도 나에게 딴 세상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구절이죠.
조집사🙎🏻‍♂️
네네, 방언을 막 쏟아내는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막 하늘의 천사들과 소통하는 특별한 영적 VIP라고 생각했겠지만...
👩🏻‍💼오집사
현실은 그저 옆에 앉은 교우들을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리는 폭력이었다는 걸 지적하는 겁니다.
조집사🙎🏻‍♂️
결국 영적 은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 종교적 우월감을 뽐내는 스펙 쌓기가 아니라는 거군요.
👩🏻‍💼오집사
그렇죠. 12절 말씀처럼 오직 교회 공동체에 덕을 끼치는가, 즉 남을 세워주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대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거예요.
조집사🙎🏻‍♂️
자기 혼자 에베레스트 정상 딱 찍고 와서 무용담 늘어놓는데 옆 사람하고 아예 말이 안 통하면, 그거는 그냥 고립된 섬이지 교회가 아니라는 거네요.
• • •

3. 1만 마디 방언을 압도하는 5마디의 진실

  • 방언만 난무하는 예배는 초신자에게 기괴한 광기로 보일 수 있습니다.
  •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 말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훨씬 가치 있습니다.
  • 영적 능력을 기꺼이 통제할 줄 아는 것이 진짜 성숙한 어른의 신앙입니다.
👩🏻‍💼오집사
맞아요. 그런데 이 문제가 단순히 우리끼리 모인 교회 안에서 시간 낭비하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게 더 큰 위기입니다.
조집사🙎🏻‍♂️
아 외부인이 개입될 때 말인가요? 그들만의 리그 밖에서 들어온 외부인이 이 광경을 목격했을 때가 진짜 찐 스릴러의 시작인 거잖아요.
👩🏻‍💼오집사
네, 그러면 바울이 아주 흥미롭고 날카로운 시선을 새롭게 딱 도입합니다.
조집사🙎🏻‍♂️
어떤 시선이죠?
👩🏻‍💼오집사
영적 카타르시스에 취한 고인물들의 시선이 아니라, 이제 막 교회에 발을 들인 초신자 혹은 불신자의 낯선 눈으로 이 영적인 파티를 바라보게 만드는 거예요.
조집사🙎🏻‍♂️
아 제3자의 객관적인 눈으로 빙의하는 거군요.
👩🏻‍💼오집사
네, 14절에서 영으로 기도할 때 마음, 즉 이성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지적하는데요. 이게 16절에 가면 공동체 전체의 치명적인 동맥경화를 일으켜 버립니다.
조집사🙎🏻‍♂️
동맥경화요?
👩🏻‍💼오집사
내가 아무리 영적으로 고상하고 막 화려한 방언으로 감사를 드려도, 갓 믿기 시작한 사람은 그게 무슨 뜻인지 단어 하나조차 유추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아멘이라고 동의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조집사🙎🏻‍♂️
아 당시 유대인이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아멘이라는 건 단순한 추임새가 아니었잖아요.
👩🏻‍💼오집사
그렇죠. 되게 중요한 고백이었죠.
조집사🙎🏻‍♂️
당신의 말에 동의하며 나와 동일한 책임과 믿음의 고백으로 받아들입니다, 라는 일종의 영적 계약서에 서명하는 행위였단 말이에요.
👩🏻‍💼오집사
맞아요.
조집사🙎🏻‍♂️
근데 그 계약서가 몽땅 외계어로 적혀 있으니 서명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소통의 고속도로에서 혼자 스포츠카 타고 막 시속 200킬로로 밟고 질주하고 있는데...
👩🏻‍💼오집사
동승자는 출발선에서 안전벨트도 못 매고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네요.
조집사🙎🏻‍♂️
같이 목적지를 향해 가야 예배인데 혼자 운전자가 딱 도착해서 '야 오늘 드라이브 영적으로 진짜 끝내줬지' 이러면서 자기만족에 빠진 꼴입니다.
👩🏻‍💼오집사
그 비유대로라면 심지어 그 스포츠카 운전의 최고 베테랑이 다름 아닌 바울 자신이었습니다.
조집사🙎🏻‍♂️
어 그래요?
👩🏻‍💼오집사
방언을 말할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요.
조집사🙎🏻‍♂️
와, 완전 기선제압이네요. 자신이야말로 그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방언의 최고 실력자라는 걸 분명하게 못 박아 두는 거잖아요.
👩🏻‍💼오집사
네 그런데 바로 다음 19절에서 엄청난 반전을 날리죠.
조집사🙎🏻‍♂️
아 그 1만 마디 방언 나오는 구절이요.
👩🏻‍💼오집사
맞아요. 그러나 교회에서는 남을 가르치기 위해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 말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 이렇게 말합니다.
구분 1만 마디 방언 5마디 예언
성격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한 언어 명확히 이해되는 이성적 메시지
대상 개인과 하나님 교회 공동체 전체
결과 타인의 소외 및 질서 붕괴 타인의 위로 및 공동체 세움

조집사🙎🏻‍♂️
저는 고린도전서 14장을 쭉 읽다가 이 대목에서 바울의 화법에 진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건 완전 고단수의 팩트 폭행이잖아요.
👩🏻‍💼오집사
속이 다 시원해지는 화법이죠.
조집사🙎🏻‍♂️
나 방언 진짜 잘해. 솔직히 너희들이 하는 거 다 합친 것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이 하거든. 이렇게 쫙 깔아놓고는...
👩🏻‍💼오집사
근데 난 너희처럼 무식하게 일만 마디씩 막 쏟아내면서 민폐 안 끼쳐. 남들 알아듣고 살리는 다섯 마디가 훨씬 가치 있거든, 이러면서 교만했던 고린도 교인들의 영적 콧대를 완전 박살 내버리는 거잖아요.
조집사🙎🏻‍♂️
네, 숫자 만이랑 다섯의 대비가 진짜 뼈를 때리는데, 도대체 일만 마디를 쓰레기통에 처박을 만큼 이 다섯 마디의 위력이 대단한 겁니까?
👩🏻‍💼오집사
바울이 20절에서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라고 일침을 놓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조집사🙎🏻‍♂️
아 어른이 되라.
👩🏻‍💼오집사
자신이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시도 때도 없이 막 여과 없이 쏟아내는 건 자기 절제력이 없는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거예요.
조집사🙎🏻‍♂️
아하, 조절을 못 한다는 뜻이군요.
👩🏻‍💼오집사
네, 영적인 스펙트럼이 아무리 넓고 화려해도 그것이 타인에게 어떻게 수용될지 헤아리고 계산해서 기꺼이 통제할 줄 아는 능력이 진짜 성숙한 어른의 신앙이라는 겁니다.
조집사🙎🏻‍♂️
뜻 없는 수많은 말들의 무가치함과 뜻이 담긴 진실한 한마디의 묵직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거네요. 만약에 이 통제력을 상실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오집사
23절을 보면 아주 적나라한 파국이 드러납니다.
조집사🙎🏻‍♂️
23절이요?
👩🏻‍💼오집사
온 교회가 모여서 다 같이 방언을 막 하고 있으면 간 믿기 시작한 사람이나 불신자들이 들어와서 보고 이 사람들 단체로 미쳤구나 하고 손가락질하지 않겠냐는 거죠.
조집사🙎🏻‍♂️
아 시청자들께서 이 23절의 상황을 한 편의 공포 영화 세트장이라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동네에 교회가 생겼다길래 호기심에 갓난 신자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오집사
네네.
조집사🙎🏻‍♂️
그런데 어둑컴컴한 본당 안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단체로 알아듣지도 못할 기괴한 외계어로 막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고 있는 겁니다.
👩🏻‍💼오집사
어우 너무 무서운데요.
조집사🙎🏻‍♂️
이거 완전 오컬트 스릴러 아닙니까? 이 사람들 단체로 약을 먹었나, 여기 사이비 종교인가? 이러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112에 신고하면서 도망가겠죠.
👩🏻‍💼오집사
교인들끼리는 영적으로 하이파이브하고 막 난리가 났겠지만, 세상의 눈에는 그저 기괴한 광기일 뿐이라는 겁니다.
조집사🙎🏻‍♂️
영적인 교만이 얼마나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생생한 묘사네요.
👩🏻‍💼오집사
반대로 24절과 25절을 보면 예언, 즉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말씀이 선포될 때 극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조집사🙎🏻‍♂️
어떤 결과가 나오나요?
👩🏻‍💼오집사
불신자가 들어와서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걸 들으면 그 말씀이 날카로운 검처럼 심령을 확 찌릅니다. 질책을 받고 심판을 받으면서 마음속 깊이 숨겨둔 죄와 상처들이 백일하에 막 드러나게 되죠.
조집사🙎🏻‍♂️
아 속마음이 다 들통나는 거군요.
👩🏻‍💼오집사
네, 그 결과 도망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참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 하고 고백하게 되는 거예요.
조집사🙎🏻‍♂️
와 완전 반전이네요.
👩🏻‍💼오집사
방언은 신비한 현상으로 찰나의 눈길을 끌 순 있어도 사람을 변화시키지는 못하거든요. 정작 사람의 내면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참된 회개로 이끄는 것은 이성을 통과한 명확한 메시지라는 뜻입니다.
조집사🙎🏻‍♂️
아 그렇군요.
👩🏻‍💼오집사
그래서 15절에서 영으로 기도하는 것과 이성, 즉 깨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사이의 완벽한 밸런스를 그렇게 요구하는 겁니다.
조집사🙎🏻‍♂️
카타르시스에 취해서 허공에 막 소리치지 말고 팩트와 메시지로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조준하라는 말이군요.
• • •

4. 통제받는 영성: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

  •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 '여자는 잠잠하라'는 구절은 성차별이 아닌 예배 질서 유지를 위한 통제의 일환입니다.
  • 참된 영성은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는 통제력을 동반합니다.
👩🏻‍💼오집사
네, 맞습니다. 자, 차가운 머리, 이성적 통제 이야기가 나왔으니, 고린도전서 14장을 읽는 한국 교회 교인들이라면 가장 당황해서 성경책을 그냥 덮어버리고 싶어질 만한 아주 돌직구 구절의 진의를 좀 파헤쳐 보겠습니다.
조집사🙎🏻‍♂️
아 드디어 그 구절이 나오는군요.
👩🏻‍💼오집사
바울이 이제 예배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잖아요. 방언을 하려거든 통역을 세우고, 통역이 없으면 입을 다물라. 예언을 하더라도 두세 명이 차례로 하고 남이 계시를 받으면 먼저 마이크 잡고 있던 사람은 잠잠하라. 아주 철저하게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조집사🙎🏻‍♂️
네, 질서에 엄청 신경을 쓰죠.
👩🏻‍💼오집사
그런데 이 맥락 속에서 34절에 가면 폭탄이 하나 터집니다. 여자들은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있어야 합니다. 복종해야 합니다. 아니 요즘 교회 생태계를 보면 권사님, 여집사님들 안 계시면 주방부터 성가대, 구역 모임까지 아예 시스템이 안 돌아가거든요.
조집사🙎🏻‍♂️
그렇죠, 교회의 척추 역할을 하시잖아요.
👩🏻‍💼오집사
네, 그런데 율법대로 복종하고 잠잠하라니요. 시청자들께서 이 대목에서 엄청나게 충격받으실 것 같은데 이거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시대착오적인 남녀 차별로 봐야 하는 건가요?
조집사🙎🏻‍♂️
아 이거 현대의 정치적 이념적 프레임으로 섣불리 재단하면 진짜 큰 오해를 낳기 십상인 구절입니다.
👩🏻‍💼오집사
그럼 어떻게 봐야 하죠?
조집사🙎🏻‍♂️
철저하게 고린도전서 14장이 흐르고 있는 전체적인 텍스트의 맥락 안에서만 들여다보셔야 해요. 바울이 이 장 전체를 관통하면서 세우고자 하는 절대적인 대원칙이 무엇인지 33절이 명확히 선언하고 있거든요.
👩🏻‍💼오집사
33절이요? 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라는 원칙이요. 지금 이 본문의 핵심 테마는 젠더 이슈가 아니라 예배 공동체의 질서와 통제입니다.
조집사🙎🏻‍♂️
아 질서와 통제.
👩🏻‍💼오집사
앞서 조집사가 짚어주신 규정들을 다시 떠올려보면 되게 명확해져요. 방언을 아무리 유창하게 막 쏟아내는 남성 사역자라도 통역이 없으면 어떻게 하죠?
조집사🙎🏻‍♂️
침묵해야죠.
👩🏻‍💼오집사
그렇죠, 영감이 솟구쳐서 예언을 하는 사람도 남이 말하기 시작하면 무조건 어떻게 합니까?
조집사🙎🏻‍♂️
잠잠해야죠. 마이크 내려놔야 합니다.
👩🏻‍💼오집사
맞습니다. 아, 그러니까 34절에 여자는 잠잠하라는 구절은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의 입을 꿰매라는 성별적 억압이 아니라 앞서 나온 통역 없는 방언의 침묵, 순서를 어기는 예언의 침묵과 정확히 동일한 선상에 있는 거군요.
조집사🙎🏻‍♂️
네 철저히 질서를 위한 통제의 일환이라는 말씀인 거죠. 35절을 보면 그 구체적인 정황 힌트가 나오는데요.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남편에게 물으십시오 라고 하잖아요.
👩🏻‍💼오집사
네네 그렇게 써 있죠.
조집사🙎🏻‍♂️
당시 고린도 교회의 예배 형태는 설교자가 일방적으로 혼자 막 떠드는 게 아니라, 유대 회당의 전통이나 헬라 철학자들의 모임처럼 서로 묻고 답하는 자유로운 토론의 형태도 띠고 있었어요.
👩🏻‍💼오집사
아 약간 세미나 같은 분위기였군요.
조집사🙎🏻‍♂️
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당시 사회문화적으로 정규 교육이나 토론 문화에서 좀 소외되어 있던 일부 여성 교인들이 예배 도중에 불쑥불쑥 되게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사적인 논쟁을 벌이면서 아하 예배의 전체적인 질서와 평화가 깨지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으로 분석이 됩니다.
👩🏻‍💼오집사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무분별한 질문이나 발언으로 공적인 예배 흐름을 딱 끊고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인 거네요.
조집사🙎🏻‍♂️
정확합니다. 여성의 인권이나 발언권 자체를 억압하려는 목적이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모든 은사와 행위의 최우선 기준은 오직 공동체의 덕과 질서라는 것이 이 텍스트가 전하고자 하는 본질인 거예요.
👩🏻‍💼오집사
듣고 보니 그 당시에 예배 풍경이 눈에 막 그려집니다. 목사님이 한참 진리를 강론하시면서 예배가 클라이맥스로 쫙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이요.
조집사🙎🏻‍♂️
이러는 거죠.
👩🏻‍💼오집사
네. 아니 근데 아까 그 구약 성경 내용은 저번 주 말씀이랑 팩트가 좀 안 맞는 거 같은데요. 이러면서 맥을 뚝 끊어버리면...
조집사🙎🏻‍♂️
그 은혜롭던 예배가 순식간에 난장판 토론장이 돼버리는 거잖아요.
👩🏻‍💼오집사
맞아요. 개인이 아무리 뜨거운 열정과 배움에 대한 호기심 혹은 영적인 은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모임의 평화와 덕을 깨뜨린다면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을 줄 아는 통제력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조집사🙎🏻‍♂️
그렇군요. 바울이 32절에서 던진 통찰이 그 모든 논의를 관통합니다. 예언하는 사람의 영은 예언하는 사람에게 통제를 받는다 이 말씀이요.
👩🏻‍💼오집사
아, 통제를 받는다.
조집사🙎🏻‍♂️
내가 막 성령 충만해서 감당이 안 된다. 영광스러워서 내 입술을 주체할 수 없다. 이런 변명은 결국 신앙의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거라는 뜻입니다.
EDITOR'S CLOSING NOTE

뜨거운 가슴만큼이나 차가운 이성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참된 신앙의 길입니다. 나만의 영적 도취에 빠져 타인을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예배와 삶의 태도를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바울의 날카로운 일침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조집사의 성경묵상은 다음 시간에도 당신의 영적 감각을 날카롭게 깨워줄 새로운 성경 텍스트의 이면을 파헤쳐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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