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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집사의 성경묵상/누가복음

누가복음 16장 -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재테크 비법?

by fastcho 2026.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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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집사의 성경묵상: 누가복음 16장 -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재테크 비법?

1.0 오프닝: "돈" 때문에 비웃음당한 예수님

'조집사의 성경묵상'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들여다볼 곳은 성경에서도 가장 현실적이고, 어쩌면 가장 불편한 주제를 다루는 누가복음 16장입니다. 바로 '돈'에 대한 이야기죠. 이 주제가 얼마나 민감했는지, 예수님께서 이 가르침을 전하셨을 때 당시 최고의 경제 전문가이자 종교 전문가 행세를 하던 바리새인들은 그를 대놓고 "비웃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14절).

2,000년 전의 이야기지만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돈은 신앙과 삶을 분리시키는 가장 강력한 경계선 중 하나이니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민감한 주제를 피하지 않고, 두 편의 아주 강력한 비유로 정면 돌파하십니다. 하나는 해고 직전의 직장인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생존기를 다룬 '불의한 청지기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뒤바뀌어 버린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입니다.

전혀 다른 두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 둘은 '돈'이라는 씨실과 '영원'이라는 날실로 정교하게 엮여있는 하나의 직물과도 같습니다. 특히 첫 번째 비유는 너무나 파격적이라서, 자칫 잘못 들으면 예수님이 마치 사기꾼의 수법을 칭찬하는 것처럼 들릴 정도입니다. 과연 이 이상하고 충격적인 재테크 비법 속에 숨겨진 예수님의 진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지금부터 그 비밀을 한번 파헤쳐 보겠습니다.

2.0 첫 번째 이야기: 해고당할 직전, 신의 한 수를 둔 청지기 (누가복음 16:1-13)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난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주인의 재산을 횡령한 청지기를 주인이 칭찬하고, 심지어 예수님께서 그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대목에서 "예수님이 왜 저러시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가르침이 그렇듯, 이 역설 속에야말로 우리의 허를 찌르는 놀라운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2.1 사건의 발단: "자네, 정리해고야!"

이야기는 한 부잣집의 자산관리인, 즉 '청지기'가 주인에게 불려 가면서 시작됩니다. "자네가 내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이 들리네. 하던 일 정리하게. 자네는 이제 해고야"(1-2절). 요즘 말로 하면, 실적 부진과 도덕적 해이로 구조조정 명단에 오른 셈입니다. 예고도 없는 해고 통보에 청지기의 머릿속은 새하얘집니다. 이 절박한 상황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풍경 아닙니까?

2.2 청지기의 생존 전략 분석

이제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청지기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의 독백이 아주 현실적입니다.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낯이 부끄럽구나"(3절). 체력도 안 되고,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는 진퇴양난의 상황. 바로 그때, 그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아이디어가 스칩니다.

"옳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 내가 청지기의 자리에서 떨려날 때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네 집으로 맞아들이도록 조치해 놓아야지." (4절)

그는 곧바로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그들의 빚 문서를 위조해 빚을 대폭 깎아줍니다. 기름 100말 빚진 사람은 50말로, 밀 100섬 빚진 사람은 80섬으로 말이죠(5-7절). 겉으로 보면 명백한 횡령이자 배임입니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돈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곧 사라질 주인의 '금융 자본'을, 자신을 살려줄 '관계 자본'으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물질적 빚을 탕감해 줌으로써, 자신에게 평생 갚아야 할 '감사와 환대의 빚'을 지게 만든 고도로 계산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2.3 반전: 주인의 뜻밖의 칭찬, 그 의미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습니다. 그는 분노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불의한 청지기를 "슬기롭게 대처하였다"며 칭찬합니다(8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주인이 그의 '부정직함'을 칭찬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주인이 감탄한 것은, 해고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낙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권한과 자원을 총동원해 자신의 미래를 영리하게 준비한 그의 '지혜'와 '결단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지점에서 핵심을 짚으십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8절).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노후와 안위를 위해 이렇게나 절박하고 영리하게 움직이는데, 영원한 삶을 약속받았다는 '빛의 자녀들'은 과연 자신의 영원한 미래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고 지혜롭게 살고 있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시는 겁니다.

2.4 핵심 교훈: "불의한 재물"로 영원한 친구를 사귀는 법

마침내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을 내리십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9절)

여기서 '불의한 재물'이란 단순히 '일시적인' 자원이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이 세상의 부는 종종 불의한 시스템 속에서 얻어지고 불공평하게 분배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처럼 불완전한 세상의 재물을 이기적으로 쌓아두는 데 집착하지 말고, 그것을 사용해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세우는 '영원한 가치'를 위해 전략적으로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청지기가 불의한 시스템의 자산(주인의 돈)을 이용해 자신을 환대해 줄 새로운 시스템(관계)을 확보했듯이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이 땅의 재물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우리의 영적 신실함을 보여주는 시금석과 같습니다. "너희가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11절)는 질문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 모든 가르침은 마침내 하나의 궁극적인 선택으로 귀결됩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마지막에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3절)

이것이 비유의 진짜 결론입니다. 이것은 재테크 비법이 아니라, '누구를 주인으로 섬길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결단의 문제입니다. 돈을 단지 생존의 도구로 보고 미래를 위해 과감히 사용한 청지기의 태도는, 이제 이어질 이야기에서 돈 자체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3.0 뼈 때리는 중간 평가: 돈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일침 (누가복음 16:14-18)

예수님의 두 비유 사이에 끼어있는 이 짧은 구절들은, 단순한 막간극이 아닙니다. 오히려 누가복음 16장 전체의 핵심을 꿰뚫는 '해설자막'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부분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진짜 비판하고자 했던 대상이 누구이며,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3.1 "돈을 좋아하는 자들"의 조롱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비웃었습니다"(14절). 왜 그랬을까요?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부(富)'는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이자, 자신이 의롭다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신성한 재물을 '불의한 것'이라 칭하며, 그것으로 영원한 것을 위해 투자하라고 가르치시니 그들의 가치관과는 정면으로 충돌한 것입니다. 그들의 비웃음 속에는 이런 생각이 담겨 있었을 겁니다. "가난한 목수 주제에 어딜 감히 돈에 대해 설교해?" 이는 오늘날 성공과 부를 하나님의 사랑과 동일시하는 일부 기복신앙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 보입니다.

3.2 예수님의 카운터펀치: "사람에게 높임 받는 그것, 하나님께는 혐오스러운 것"

이들의 조롱에 예수님은 그야말로 '카운터펀치'를 날리십니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을 아신다.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그러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이다." (15절)

이거죠. "여러분, 저희는 이렇게 경건하고, 이렇게 축복받았습니다. 저희 SNS 좀 보세요!"라고 외치는 셈인데, 예수님은 "아, 그거요? 하나님은 역겨워하시는데요."라고 면전에다 말씀하신 겁니다. 세상의 '좋아요' 개수가 천국의 평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아주 뼈아픈 팩트체크죠.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폭로하십니다. 그들은 스스로 율법의 수호자라고 자처하지만, 실상은 율법의 정신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기준이 결코 그들의 생각처럼 만만하거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하십니다.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는 것이 더 쉽다"(17절). 그러면서 아내를 버리는 문제(18절)를 예로 드십니다. 이는 그들이 얼마나 자기 편의대로 율법을 왜곡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을 돈 사랑으로 대체하고, 이웃 사랑의 계명을 자기 욕심을 위해 쉽게 저버리는 그들의 의로움이란 완전히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십니다. 이처럼 뒤틀린 가치관이 죽음 너머에서 얼마나 끔찍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되는지, 한 편의 생생한 드라마를 통해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십니다.

4.0 두 번째 이야기: 모든 것이 뒤바뀐 세상, 부자와 거지 나사로 (누가복음 16:19-31)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단순한 교훈을 넘어,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후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현재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지닌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앞서 나온 '불의한 청지기 비유'와 '바리새인들을 향한 비판'에 대한 최종 결론과도 같습니다.

4.1 살아생전: 극과 극의 삶

이야기는 이 땅에서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한쪽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사는 부자가 있습니다(19절). 다른 한쪽에는 그의 집 대문 앞에서 "헌데 투성이 몸으로 누워서,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는 거지 나사로가 있습니다. 그의 처지는 너무나 비참해서 "개들까지도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다"고 성경은 묘사합니다(20-21절).

여기서 부자의 죄는 악한 행동을 한 '행위(commission)'가 아니라, 철저한 '무관심(omission)'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풍요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겼을 뿐,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치명적인 실패였습니다. 그는 문 앞에 있는 나사로의 고통을 외면함으로써, 자신에게 맡겨진 재물을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사용해야 할 청지기의 직무를 유기한 것입니다.

4.2 죽음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역전

그러나 죽음은 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습니다. 거지는 죽어 "천사들에게 이끌려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 역시 죽었지만 그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22-23절).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단 한 번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도움을 청하자,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올 수도 없다." (26절)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기회도, 되돌릴 방법도 없다는 서늘한 선언입니다. '큰 구렁텅이'는 생전에 그가 나사로와의 사이에 만들어 놓았던 무관심의 벽이 영원한 단절이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4.3 부자의 뒤늦은 후회와 거절당한 간청

절망에 빠진 부자는 두 가지 간청을 합니다. 첫째는 나사로를 보내 물 한 방울이라도 찍어 자신의 고통을 덜어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나사로를 다시 살려 보내 다섯 형제들에게만은 이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달라는 것입니다(24, 27-28절). 부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사로를 자신의 심부름꾼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은 냉정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29절) 부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초자연적인 기적이 필요하다고 절규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최종 응답은 이 장 전체에서 가장 서늘하고도 중요한 선언일 것입니다. 이 대답은 모든 책임을 다시 우리에게로 돌려놓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31절)

부자의 문제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충분한 말씀(모세와 예언자들)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욕심대로 살기로 선택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완고한 마음에는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5.0 클로징: 당신의 '통장 잔고'가 아니라 '거래 내역'이 당신을 말해준다

누가복음 16장의 불의한 청지기와 부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우리 앞에 놓인 하나의 선택지를 보여줍니다. 청지기는 자신의 경력이 끝나는 순간, 주인의 일시적인 재물을 사용해 자신의 영원한 미래를 확보했습니다. 반면 부자는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 일시적인 재물을 영원한 것을 위해 사용하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미래를 모두 잃었습니다.

이 두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최종 메시지는 결코 '돈은 나쁘다' 혹은 '부자는 악하다'가 아닙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 중 진짜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것.

누가복음 16장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땅의 자원을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얼마나 영리하고 절박하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최종 심판대에는 '통장 잔고'가 아니라, 당신의 시간과 재물을 어디에 썼는지를 보여주는 '거래 내역서'가 올라갈 것입니다. 당신의 거래 내역은 당신이 누구의 편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조집사의 성경묵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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