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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집사의 성경묵상/누가복음

누가복음 18장 - 끈질김과 겸손, 그리고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법

by fastcho 2026.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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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집사의 성경묵상: 누가복음 18장 - 끈질김과 겸손, 그리고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법

1. 오프닝: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읽어주는 성경의 문법

조집사의 성경묵상입니다.

[냉소적인 웃음 섞인 한숨] 아니, 여러분. 세상이 참 각박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맨날 듣는 소리가 뭡니까. 효율, 가성비, 그리고 압도적인 수익률 아닙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이게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비즈니스 모델들이 나열되어 있거든요.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도대체 왜 성경은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이 '최고의 수익'을 낸다고 주장하는 걸까요?

오늘 다룰 주제는 민원, 스노비즘, 그리고 정보 비대칭입니다. 언뜻 보면 주일 학교 공과 공부 같지만, 실상은 우리 인생이라는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아주 치밀한 전략 리포트입니다. 조집사가 지독한 현실주의자의 시각으로, 이 고전 텍스트 속에 숨겨진 '천국 시장 진입 전략'을 아주 탈탈 털어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귀찮게 해서 원하는 답을 받아낸 한 여인의, 소위 말하는 영적 민원 성공기부터 한 번 분석해 보시죠.

2. 제1섹션: 보상받는 끈질김 -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경제학

[서류를 넘기는 소리] 자,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8절을 보면 아주 흥미로운 대결 구도가 나옵니다. 한쪽은 하나님도 안 무서워하고 사람도 우습게 아는, 소위 '갑 중의 갑'인 불의한 재판관이고요. 다른 한쪽은 백도 없고 돈도 없는 과부입니다. 자, 여러분이 분석가라면 어디에 베팅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재판관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 여자의 전략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무서워요. 바로 귀찮음의 비용(Cost of Annoyance)을 극대화하는 겁니다. 원문을 보면 재판관이 이런 말을 해요. "저 여자가 나를 너무 못 견디게 하니 권리를 찾아줘야겠다." 여기서 '못 견디게 하다'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내 눈 아래를 때려서 멍들게 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지금 재판관의 워라밸을 완전히 박살 내고 있는 겁니다.

시청자들께서 보시기에 이건 좀 품격 없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는 이걸 '기도의 본질'이라고 정의합니다. 기도를 무슨 고상한 명상이 아니라, 내 권리를 되찾기 위한 소비자의 집요한 민원 제기로 본 거죠.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건 우리가 논리적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만큼 절박하게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듯 매달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결국 영적 수익률의 핵심 자산은 세련된 말솜씨가 아니라 끈질긴 체력이라는 소리죠.

그런데 말입니다, 무조건 떼를 쓴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다음 리포트에서 그 태도의 문제를 짚어보시죠.

3. 제2섹션: 영적 스노비즘(Snobbery)의 함정 - 바리새인 vs 세리

자, 9절부터 14절을 보면 소위 말하는 '영적 스노비즘'의 끝판왕이 등장합니다.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이 사람의 기도를 들어보세요. "하나님, 저는 남의 것을 뺏지도 않고, 불의하지도 않고, 저 세리 같은 놈이랑도 다릅니다." [허탈한 듯 웃으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 아닙니까? 요즘 SNS에 올라오는 오마카세 인증샷이나 링크드인(LinkedIn)의 자아도취형 성과 나열이랑 소름 돋게 닮았습니다. "나 이만큼 훌륭해"라는 퍼포먼스형 생산성 과시죠.

반면에 세리를 보십시오. 이 사람은 멀찍이 서서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만 칩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게 뭡니까? 철저한 자기 객관화입니다. 자신의 영적 대차대조표가 사실상 '완전자본잠식' 상태임을 시원하게 인정한 거죠.

여기서 예수의 진단이 아주 냉혹합니다. 바리새인처럼 자기를 높여서 버블을 형성하는 자는 주식 차트처럼 꺾일 것이고, 세리처럼 바닥에서 시작하는 자는 반등한다는 겁니다. 결국 천국 시장에서는 '나는 의롭다'는 허위 공시가 가장 큰 상장 폐지 사유가 된다는 뜻이죠. 영적 세계에서는 스노비즘이 가장 위험한 하방 리스크인 셈입니다.

자, 자기를 높이는 자는 꺾이고 낮추는 자는 올라간다는 이 원리가 가장 극적으로 적용되는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바로 아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4. 제3섹션: 진입 장벽의 재설정 - 어린아이와 부자 관리의 딜레마

[안경을 고쳐 쓰며] 자, 15절부터 30절을 보면 아주 대조적인 두 그룹이 나옵니다. 먼저 제자들입니다. 아이들이 예수께 오니까 막 혼내면서 막아요. 이게 전형적인 꼰대 마인드거든요. "야, 여기가 어디라고 애들이 와? 격 떨어지게." 일종의 진입 장벽을 세워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아니다, 진입 장벽을 제로로 낮춰라. 천국은 이런 아이들의 것이다."

이때 한 부자 관리가 등장합니다. 이 친구는 엘리트예요. 계명도 다 지켰대요. "내가 뭘 더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라고 묻죠. 추가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안해 달라는 건데, 예수의 답변이 충격적입니다. "네 모든 자산을 청산(Liquidation)해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라라."

이 부자 관리는 결국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왜냐? 가진 게 너무 많았거든요. 여기서 그 유명한 낙타와 바늘귀 비유가 나옵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이건 도덕적인 비난이 아니라 물리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겁니다. 자산이라는 살집이 너무 많이 붙어서 문을 못 통과한다는 위트 있는 풍자죠.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럼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예수는 여기서 결정적인 힌트를 줍니다. "사람은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27절) 결국 구원은 인간의 자본이나 노력이라는 에쿼티(Equity)로 사는 게 아니라, 시장 조성자인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으로만 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자, 부자가 자기 자산 아까워서 돌아갈 때, 예수님은 정작 본인이 감당해야 할 가장 큰 '비용'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5. 제4섹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 죽음의 예고와 여리고의 맹인

[목소리를 낮추며]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아주 투명하게 예고합니다. 이건 일종의 기업 실적 하향 조정 공시 같은 건데, 제자들은 이걸 전혀 못 알아들어요. '선택적 인지 불능' 상태에 빠진 겁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죠.

그런데 그 길가에 앉아있던 한 맹인은 달랐습니다. 여기서 엄청난 정보 비대칭이 발생합니다. 눈 뜬 사람들은 다들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냥 동네 유명한 랍비가 지나간다는 '노이즈'죠. 그런데 이 맹인은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38절)

이게 소름 돋는 포인트입니다. 이 맹인은 눈이 멀었지만, 예수라는 인물의 본질적인 가치, 즉 '다윗의 자손'이라는 메시아적 브랜드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겁니다. 주변에서 조용히 하라고 압박하지만, 그는 이 정보의 가치를 확신하고 더 크게 외칩니다. 시장의 노이즈를 뚫고 펀더멘털을 잡은 맹인의 압도적인 투자 안목 아닙니까?

결국 인생의 구원은 많이 아는 척하는 지식인 제자들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무엇이 '진짜 정보'인지를 파악하고 소리를 지르는 맹인에게 돌아갑니다.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한 건 결국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이 사람이었습니다.

6. 클로징: 인생이라는 포트폴리오에 간절함 한 스푼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18장을 통해 네 가지 삶의 전략을 살펴보았습니다.

정리해 보죠. 첫째, 불의한 재판관도 손들게 할 만큼 끈질기게 요구하는 '민원의 힘'을 가지십시오. 둘째, 바리새인처럼 타인과 비교하는 'SNS식 자기 과시'를 버리고, 세리처럼 처절한 '자기 실사(Due Diligence)'를 거치십시오. 셋째, 내가 가진 기득권과 자산이 오히려 천국의 좁은 문을 통과하는 데 방해가 되는 '물리적 장애물'은 아닌지 점검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본질을 꿰뚫어 보는 '다윗의 자손'을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십시오.

이게 바로 현대판 성공 방정식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강력한 생존 전략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포트폴리오에 오늘 이 간절함과 겸손을 딱 한 스푼만 얹어보시면 어떨까요?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가벼운 몸집으로, 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승리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조집사는 이만 퇴근합니다.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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