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문 스크랩

반도체 공장 "지었는데 못돌리는" 일본의 딜레마 - 한국과의 비교와 시사점

by fastcho 2025. 5. 20.
반응형

반도체 공장 "지었는데 못돌리는" 일본의 딜레마 - 한국과의 비교와 시사점

일본 반도체 업계가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수천억 엔을 들여 공장은 지었지만 가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일본 경제신문의 최신 보도에 따르면, 2023년도 이후 건설이 완료된 일본 국내 반도체 공장 7곳 중 4월 말 기준으로 무려 4개 공장이 아직 본격적인 양산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AI 반도체를 제외한 시장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일본 반도체 업계가 잔뜩 움츠러든 모습을 보이고 있네요.

"지었으니 돌려야지" 아니면 "돌릴 수 없으니 기다려야지"

일본의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2024년 4월, 10년 전에 폐쇄했던 코후 공장(야마나시현 카이시)을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6. 당초 2025년 초에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전기자동차(EV) 등에 사용되는 파워 반도체 수요가 예상보다 저조해 계획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13. 르네사스의 시바타 히데토시 사장은 4월에 "매우 불투명한 시장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최대한 신중한 시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13.

로옴은 미야자키현 쿠니토미초에서 2023년에 공장을 인수했고, 2024년 11월부터 시제품 생산은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양산 시기는 미정인 상태입니다13. 키옥시아 홀딩스는 9월에 키타카미 공장 제2제조동(이와테현 키타카미시)을 가동할 예정인데, 건물은 2024년 7월에 완공되었지만 메모리 시장 회복을 기다리기 위해 생산 개시를 늦추고 있습니다413.

이미 양산을 시작한 기업들도 생산 확대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소니 그룹은 2023년 말까지 나가사키현 이사하야시에 새 공장을 완공하고 양산을 시작했지만, 건물에 여유가 있음에도 추가 제조 장비 반입은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결정할 예정입니다13.

일본 반도체 산업, 왜 쇠퇴했나?

과거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한때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1988년에는 반도체 판매액에서 미국을 넘어서 세계 시장 점유율의 50%를 차지했었죠. 그러나 이후 한국과 대만 기업과의 가격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13. 최근 미국 조사회사 옴디아에 따르면, 일본 반도체의 판매액 점유율은 2024년에 7.1%로 2023년보다 1.7%p 하락했다고 합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해요13.

더 큰 문제는 기술 경쟁력에 있습니다. 현재 최첨단 반도체의 회로 선폭이 2나노미터(나노는 10억분의 1)인데 반해, 일본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것은 12나노미터까지입니다. 일본 기업에 한정하면 40나노미터까지 후퇴한다고 하니, 심각한 기술 격차가 존재하는 거죠13.

한국 반도체 산업과의 결정적 차이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 2위를 차지하며 최첨단 공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삼성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도 TSMC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죠.

반면 일본은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와 소재 기업은 많지만, 종합 반도체 제조 기업은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AI 반도체의 설계·개발·제조 분야에서 해외 기업에 뒤처지면서 생성 AI 붐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TSMC가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을 시작한 것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죠3. 하지만 이것이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본 반도체 업계의 구조적 문제점

일본 반도체 산업의 문제는 단순히 시장 상황만이 아닙니다. 과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기업들이 왜 이렇게 위축됐을까요?

첫째, 일본 기업들은 수직 통합형 비즈니스 모델을 고수하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설계와 제조를 분리해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는 팹리스-파운드리 모델로의 전환이 늦었죠.

둘째, 과감한 투자 결정이 어려운 기업 문화도 문제입니다. 반도체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산업인데, 일본 기업들은 안정성을 추구하며 대규모 투자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셋째, 메모리 반도체에서 시스템 반도체로 빠르게 전환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일본은 과거 DRAM 시장에서 강세를 보였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로의 전환이 늦었던 거죠.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면 성과가 아직 미미한 상태입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AI 반도체 경쟁에서도 뒤처져 있습니다13.

특히 AI를 제외한 반도체 수요가 부진한 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PC나 스마트폰 수요가 부진해 2024년 세계 공장 가동률은 6~7%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업계의 건전성 지표인 8~9%를 밑도는 수준이죠13.

더구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에 관세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일본의 반도체 수출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의 반도체 수출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지만, 최종 제품 가격이 오르면 반도체 수요도 약화될 수 있어 공장 미가동 상태가 더 길어질 우려도 있습니다13.

개인적 소견: "일본의 반도체, 미래는 있는가?"

일본에 살면서 반도체 산업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한때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이 이제는 공장을 지어놓고도 가동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으니까요. 르네사스의 코후 공장이 재가동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반가웠지만, 결국 시장 상황을 이유로 본격 가동이 미뤄진다니 아쉬움이 큽니다.

일본과 한국의 반도체 산업 현실은 참 대조적입니다. 일본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려면 보다 과감한 투자와 구조 개혁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AI 시대에 맞는 반도체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인텔이나 엔비디아처럼 과감하고 혁신적인 도전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의 강점을 살려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까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계속되고 있지만, 기업들의 도전 정신과 혁신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도체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