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의 '출구 없는 4만 종목' 비상장 주식, 마지막 숙제로 남다
일본 기업들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주식 상호보유'(株式持ち合い) 해소에 새로운 벽이 등장했습니다. 상장주식의 감소는 진행되고 있지만, 거래 시장이 없는 비상장주식의 매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닛케이신문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일본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문화가 만들어낸 이 난제, 과연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4만 종목의 '족쇄' - 일본 기업의 비상장 정책보유주
닛케이신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일본 상장기업이 보유한 2024년 3월 말 기준 '정책보유주식'(持ち合い株)은 비상장주가 4만 2,558종목으로 상장주보다 무려 13%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12. 주식 가치는 5조 엔으로 상장주의 67조 엔보다는 작지만, 그 수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형 은행들조차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쓰비시UFJ 파이낸셜 그룹의 경우, 2023년도 상장 정책보유주는 999종목으로 2020년도보다 24% 감소했으나, 비상장 정책보유주는 1038종목으로 겨우 7% 감소에 그쳤습니다5. 미쓰이스미토모나 미즈호 등 다른 메가뱅크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대형 은행 관계자는 "상장주는 시장에서 팔 수 있지만, 비상장주는 시장에 내놓을 수도 없고 매수처도 찾기 어렵다"며 고민을 토로했습니다59.
'가족 증명서' 같은 주식 - 일본식 비즈니스 관계의 상징
주식 상호보유는 고도경제성장기에 안정적인 주주 확보와 거래관계 강화를 목적으로 일본에서 널리 확산된 독특한 비즈니스 관행입니다4. 특히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전후 해체된 구 재벌계 기업 그룹의 결속을 높이는 목적도 있었습니다617.
한 중소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사장은 "모르는 회사에 팔리면 곤란하다"며 당혹감을 표시하면서 "주식 보유는 가족으로서의 증명서 같은 것이다. 팔린다면 슬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2. 이처럼 일본 기업에게 주식 상호보유는 단순한 투자가 아닌 '관계'의 상징인 셈입니다.
한국과 일본, 기업 문화의 차이와 시사점
한국의 기업 문화와 비교해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한국도 과거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졌으나, 일본과 같은 광범위한 주식 상호보유 관행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총수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가 형성된 반면, 일본은 기업 간 네트워크를 통한 '계열화'(系列化)가 특징이었죠.
이런 차이가 발생한 배경에는 역사적, 문화적 요소가 있습니다. 일본은 '집단주의'를 바탕으로 한 기업 간 결속을 중시했고, 한국은 가족 중심의 경영권 승계를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화와 투자자들의 압력으로 양국 모두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이 겪고 있는 이 문제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ESG 경영이 강조되고 지배구조 개선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일본의 사례는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난제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구 전략을 찾아서 - 새로운 시도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M&A 중개 대기업인 스트라이크는 2023년에 전문 투자 펀드인 일본기업투자기반(JCIP)을 설립했습니다2. 이 펀드는 상장기업이 보유한 거래처 등의 비상장주를 매입하는 역할을 합니다. SBI홀딩스 계열의 키스톤 파트너스도 1000억 엔 규모의 펀드를 설립했습니다5.
JCIP는 출자 비율이 20%를 넘지 않도록 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매각 요청이 없는 한 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주식의 배당금은 받지만 이사는 파견하지 않고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중립적인 접근법이 비상장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요?
개인적 논평: 전통과 혁신 사이의 딜레마
일본 기업의 주식 상호보유 해소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변화'의 어려움을 실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윤활유도 너무 오래 쓰면 엔진을 망친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한때는 일본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했던 이 관행이 이제는 오히려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점은, 일본의 이 골치 아픈 문제가 한국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일본식 경영을 벤치마킹하던 한국 기업들이 이제는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일본을 참고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야구로 치면, 앞 타자가 삼진을 당하는 걸 보고 다음 타자가 전략을 수정하는 것과 같은 이점이랄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일본의 주식 상호보유 문화가 단순히 '나쁜 관행'이 아니라 그들만의 비즈니스 철학과 가치관을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파트너십, 상호 신뢰, 안정성 추구 - 이런 가치들이 경쟁과 효율만 추구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완전히 버려야 할 것들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일본 기업들이 비상장 정책보유주식이라는 마지막 숙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혁신적인 해법이 나올지 앞으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웃 나라의 이런 변화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더 유연하고 효율적인 지배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이 기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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