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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로, 달러 패권에 던진 유럽의 도전장 - 달러의 지배 벗어나려는 위험한 게임

by fastcho 202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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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로, 달러 패권에 던진 유럽의 도전장 - 달러의 지배 벗어나려는 위험한 게임

"이제야말로 통화 방어에 집중할 때입니다." 지난 3월 20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의회 공청회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의 라가르드 총재가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 그녀가 강조한 것은 ECB가 개발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 '디지털 유로'의 필요성이었죠. 닛케이 신문은 최근 '기축 없는 세계 - 플라자 합의 40년' 시리즈를 통해 유럽의 이러한 움직임이 단순한 디지털 혁신이 아닌,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대한 도전장임을 날카롭게 짚어냈습니다.

달러 패권에 균열을 내려는 유럽의 야심

ECB는 4월 17일 이사회에서 디지털 유로 도입을 위한 "법제도의 신속한 정비"를 공식화했습니다1. 그저 기술적 혁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이 움직임의 핵심에는 달러에 대한 유로화의 존재감을 지키고, 나아가 반격하려는 유럽의 야심이 숨어 있습니다.

유로존 20개국 중앙은행 멤버들로 구성된 '특별부대'까지 출동시킨 ECB의 이 작전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닙니다. 금융시스템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전략적 움직임이죠. 현재 유럽의 결제 시스템은 미국 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유럽 내 신용카드 결제의 약 3분의 2가 비자나 마스터카드 같은 미국 기업들의 수중에 있으며, 유로 가입국 중 13개국이 결제 서비스에서 미국 등 역외 자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 지금? 트럼프 변수와 예측 불가능한 미국

라가르드 총재가 이처럼 디지털 유로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경계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군에 평화를 의존하면서 후한 복지를 유지한다"며 유럽을 비난하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인 것이죠.

1999년 유로 탄생 이후 거의 30년, 유로로 역내 거래를 완결시키겠다는 이상과 달리 유럽의 금융 시스템은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9. 이대로라면 막대한 수익과 개인 데이터가 미국으로 계속 유출될 테니, 유럽으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디지털 시대의 통화 전쟁

유럽이 디지털 통화에 거는 기대는 명확합니다. 이 분야에서 미국을 앞서면 통화의 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디긴도스 ECB 부총재는 "유럽이 한층 더 통합된다면 수년 후에는 달러의 대체 통화가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반면 미국은 중앙은행 주도의 CBDC가 아닌, '스테이블코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520. 트럼프 대통령은 3월 7일 백악관에서 열린 '가상통화 서밋'에서 "연방의회가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을 가결하기를 기대한다"며 8월까지 이 법안에 서명할 의향을 보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가 약 2460억 달러(35조 원)에 달하며, 이 중 95% 이상이 달러 기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달러의 무역 결제 비율(약 50%)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미국이 디지털 시대에도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한국은행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실증사업인 '프로젝트 한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20. 세계 주요국들이 CBDC 개발에 뛰어든 상황에서 한국도 예외일 수 없겠죠.

그런데 이게 우리 한국인에게 왜 중요할까요? 유로와 달러의 디지털 통화 경쟁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국제 금융 질서의 재편을 의미합니다. 과거 한국이 IMF 위기를 겪었던 것처럼, 국제 금융 질서의 변화는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은 미국과 안보 동맹 관계이면서도 중국과의 무역 의존도가 높고, 일본과는 역사적으로 복잡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 주도의 달러 체제와 유럽의 디지털 유로,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요?

기축통화의 미래, 새로운 플라자 합의가 필요할까?

40년 전 플라자 합의는 달러화의 고평가를 시정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이었습니다7. 당시 합의는 기축통화 달러의 쇠퇴를 보여주는 현상이었지만, 결국 달러 체제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지금 유럽은 디지털 유로를 통해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으로 디지털 시대에도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 합니다. 중국은 이미 디지털 위안화로 1조 달러 이상의 거래를 기록하며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9.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러한 통화 경쟁은 결국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40년 전 플라자 합의의 입안자 중 한 명인 티트마이어 전 독일 연방은행 총재는 "달러, 유로에 인민폐, 엔을 더한 통화 바스켓이 언젠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국제 정세를 보면, 통화를 둘러싼 무신경한 다툼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분야에서 시작된 유럽과 미국의 대립은 티트마이어의 예언을 끝없이 먼 미래로 밀어내는 듯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국제 금융 질서의 변화를 주시하며, 우리 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디지털 통화의 시대, 우리는 어느 쪽에 베팅해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만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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