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메르츠 정권, 한국이 주목해야 할 이유는? - 닛케이가 말하는 '좁은 정책 선택지'의 의미
닛케이신문이 최근 발표한 "독일 메르츠 정권의 방향성" 분석 기사가 일본에서 화제다. 표면적으로는 독일 내정에 관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 기사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왜 일본 언론이 독일 정치를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을까?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는 어떤 의미일까?
전후 최초 수상 선출 실패, 독일에게 무슨 일이?
올해 5월 6일, 독일 연방의회에서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다1. CDU-CSU의 메르츠 당수가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해 수상 선출에 실패한 것이다. 연립여당이 328석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내 반란으로 인해 2차 투표까지 가야 했다는 것은 전후 독일 정치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이 아니다. 독일 정치의 중도 세력 약화와 극단주의 세력 확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극우 AfD가 152석으로 제2당이 되고, 좌파당도 상당한 의석을 확보하면서 전통적인 중도 정치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4.
한국과 독일, 의외로 비슷한 딜레마
한국과 독일이 직면한 상황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두 나라 모두 무역의존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인구 고령화와 사회 양극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의 2024년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6은 한국이 겪고 있는 저성장 기조와 비슷하다. 특히 독일이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으면서도 디리스킹을 추진해야 하는 딜레마는 한국에게도 익숙한 고민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재정정책의 경직성이다. 독일의 '채무브레이크'는 GDP 대비 0.35% 이하로 재정적자를 제한하는 극도로 엄격한 규칙이다5. 이는 한국의 재정준칙 논의와 묘하게 겹친다. 두 나라 모두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투자 확대가 절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트럼프 쇼크가 만든 독일의 '전향'
가장 주목할 부분은 독일이 트럼프 2기 출범을 계기로 기존 재정 철학을 180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8. 메르츠는 선거 기간 중 "채무브레이크는 수정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 가능성과 유럽 방위비 증액 압박에 직면하자 돌연 입장을 바꿨다.
약 160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와 무제한 방위비 증액을 위해 헌법까지 개정한 것은 그야말로 '혁명적' 변화다. 이는 한국이 직면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준다. 만약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거나 한미동맹에 변화가 생긴다면, 한국도 비슷한 정책 전환을 고려해야 할 수 있다.
일본이 주목하는 진짜 이유
일본 언론이 독일 정치를 이렇게 세밀하게 분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일본 역시 재정 건전성과 성장 동력 확보라는 모순된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채무브레이크 개정은 일본의 재정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나아가 일본은 독일의 극우 세력 부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AfD의 약진은 일본 내 우익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극단주의 세력이 어떻게 성장하고, 기존 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게 주는 교훈들
독일 사례가 한국에게 주는 교훈은 여러 가지다.
첫째, 정치적 중도 세력의 약화는 정책 선택지를 극도로 제한한다는 점이다. 독일이 헌법 개정을 위해 신의회 소집 전 구의회에서 '꼼수'를 부린 것은 극단 세력의 견제 때문이었다7. 한국도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면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둘째, 외부 충격에 대한 정책 유연성의 중요성이다. 독일이 트럼프 쇼크 앞에서 기존 신념을 버리고 실용적 선택을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책 도구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셋째, 사회 통합의 중요성이다. 독일에서 좌파당이 "평화주의를 내세워 방위비를 약자 지원에 돌려야 한다"며 젊은층을 끌어들인 것8은 한국의 세대갈등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경제성장과 사회복지, 안보와 복지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는 한국도 풀어야 할 과제다.
개인적 논평: 한국은 독일보다 유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한국은 독일보다 나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독일은 연방제 국가로 중앙정부와 주정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조다. 또한 한국은 독일만큼 극단적인 재정 제약이 없어 정책 대응력이 더 높다.
하지만 독일의 경험에서 배울 점은 분명하다.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발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이야말로 중견국이 살아남는 핵심 역량이라는 것이다.
메르츠 정권의 앞으로 1년은 한국에게도 중요한 관찰 대상이 될 것이다. 과연 독일이 좁은 정책 선택지 속에서도 경제 재생을 이뤄낼 수 있을지, 그 결과가 한국의 미래 정책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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