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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가나가와] 요코하마 | 카와사키 | 요코스카

욱일기가 걸려있어서 한국인들을 본노하게 만드는 요코스카에 위치한 세계 3대 기념함 | 미카사 공원 기념함 미카사 三笠公園 記念艦三笠

by fastcho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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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평점이 4.1점에 리뷰가 7천개가 넘는 공원이다 

 

미카사 공원 · 82 Inaokacho, Yokosuka, Kanagawa 238-0003 일본

★★★★☆ · 공원

www.google.com

 

https://maps.app.goo.gl/Y9q95tMybGTi6RuQA

 

아마도 저 배가 미카사 인데 그래서 미카사 공원이라고 부르나보다

근데 문제가.. 저 일장기.. ㅋㅋ

한국인 분노 버튼이 있다 

 

일단 지피티형에게 물어보자

三笠公園 (미카사 공원)과 記念艦三笠 (기념함 미카사)는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 위치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이곳은 일본 해군의 중요한 유산을 기념하는 장소로, 특히 러일 전쟁 당시 활약한 전함 미카사에 대한 기념과 보존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記念艦三笠 (기념함 미카사)

역사와 배경
전함 미카사는 1902년에 영국에서 건조된 전함으로, 러일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기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05년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 전투는 일본 해군의 역사에서 중요한 승리로 기록됩니다.

전시와 보존
전함 미카사는 현재 기념함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내부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전함 내부를 관람하며, 당시의 해군 생활과 전투 상황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전시물로는 당시 사용된 무기, 장비, 사진, 문서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화재 지정
전함 미카사는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해군 역사와 전쟁사를 기념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뭔가 한국 침략과 관련이 있는지도 물어봤따

 

러일 전쟁
- 배경러일 전쟁은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일본과 러시아 간에 벌어진 전쟁입니다. 
양국은 만주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놓고 충돌했습니다.
- 쓰시마 해전: 기념함 미카사는 1905년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기함으로 활약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일본 해군은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하며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후 결과
- 포츠머스 조약: 러일 전쟁 후, 1905년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이 조약을 통해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후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화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의 한국 침략
- 을사늑약(1905년): 러일 전쟁 후,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보호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의 시작이었습니다.
- 한일 병합 조약(1910년): 1910년, 일본은 한일 병합 조약을 통해 한국을 완전히 병합하고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기념함 미카사의 역할
기념함 미카사 자체는 주로 러일 전쟁과 관련된 전함으로, 일본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화 과정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러일 전쟁에서의 승리일본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이후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게 된 중요한 배경 중 하나였습니다.

 

뭐 직접적으로 한국 침략과는 관련이 없지만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한국 침략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즉 유쾌하지만은 않다 

 

여기 미카사 공원이라고 적혀있지만 사실 여기서부터 거의 10분을 더 걸어가야한다 

여기는 어찌보면 미군부대 입구같은 느낌.. 

 

 

 

공원 지도는 이렇게 되어있다 

아래 보면 길고 좁게 되어있어서 실제 배가지 보려면 꽤 걸어야한다

세계 3대 기념함이라고 하는데 그건 지피형이 말하기는 주관적인거라고 한다 

기념함 미카사는 일본에서 매우 중요한 기념함으로, 러일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기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세계 3대 기념함"이라는 표현은 주관적일 수 있지만, 미카사는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역사적 전함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USS 미주리HMS 빅토리와 같은 다른 유명한 기념함들과 함께, 미카사는 해군 역사와 전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다가 요코스카 버스를 만났는데 뭔가 아담하고 귀여웠다 

 

 

 

그리고 드디어 공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보이는 배와 욱일기.. ㅂㄷㅂㄷ..

욱일기가 왜 문제인지 한번 물어봤따 

욱일기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

제국주의와 침략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군사적 확장과 침략을 상징하는 깃발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 군대가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면서 이 깃발을 사용했습니다.
한국, 중국, 필리핀 등 일본의 침략을 받은 국가들은 욱일기를 일본의 군사적 침략과 식민 지배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전후 처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군사적 상징을 사용하지 않도록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나 욱일기는 일본 자위대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주변국과의 외교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념함 미카사에서 욱일기를 전시하는 것은 일본 내에서는 역사적 유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에서는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상징으로 인식됩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의 차이와 민감한 상징물의 사용은 외교적 갈등과 민족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따라서 욱일기의 사용과 전시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주변국과의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 아저씨는 누구지

미카사 공원에 있는 동상은 일본 해군의 제독이자 러일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을 지휘했던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 제독의 동상입니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일본 해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특히 쓰시마 해전에서의 승리로 유명합니다.
그의 동상은 미카사 공원 내에 위치해 있으며, 일본 해군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는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뭐 우리로 따지면 이순신 같은건가 싶긴 한데.. 

침략자 아닌가 싶기도 하고.. ㅋㅋ

 

 

입장료는 600엔 

뭐 이정도면 크게 부담은 없다

 

 

귀요미 입장권

 

 

세계3대기념함 미카사

 

 

 

뭐 미사일도 있어보인다 

미카사는 1904년(메이지 37년) 2월에 시작된 러일 전쟁에서, 도고 대장이 이끄는 연합함대의 기함으로서, 종종 적의 집중 포화 속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같은 해 8월 10일 황해 해전에서는 러시아 함대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1905년(메이지 38년) 5월 27일 일본해 해전에서는 러시아 발틱 함대를 전멸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일본 해군의 대표적인 군함입니다.

일본해 해전의 대승리는 세계사의 흐름을 크게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위업을 이룬 일본 민족의 자부심과 영광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상징"으로서 미카사는 1926년(다이쇼 15년) 많은 기념품과 함께 이곳 요코스카의 미카사 공원에 보존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근데 이런거 보면.. 정말 뭔가 반성이라는 느낌은 1도 없어보이긴 한다

세계 3대 기념함 "미카사" Memorial Ship MIKASA**

기념함 미카사는 1902년에 영국에서 준공되었습니다. 
러일 전쟁에서는 도고 헤이하치로 사령장관이 승선하여, 연합함대의 기함으로서 일본해 해전에서 발틱 함대를 격파한 후, 1926년에 기념함으로서 요코스카에 보존되었습니다.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에서 2020년도 일본 전국 박물관 톱 20에도 선정되었습니다. 
세계 3대 기념함 "미카사"는 루트 뮤지엄의 위성 시설이기도 합니다.

 

 

 

참 이런거 보면 무식해보이기도 하는데

위에서 티켓을 사면 배에서 이 관람권으로 바꿔준다

뭐하러 이렇게 두번 바꾸는지 알수가 없다 

 

 

 

이제 배 안은 모두 전시실이다

 

 

 

자세히 보려면 끝이 없겠지만 참 신기한게 많았다 

 

 

 

모스부호도 있었다

이런거 보면 참 어느세월에 이걸 치고 있나 싶기도 한데

이거라도 있는 시절이면 정말 이걸로 목숨을 걸고 전문가가 있었을것 같다 

 

 

 

그리고 또 분노 버튼이... 

 

 

 

그리고 아저씨들이 있다 

 

 

아까 그 동상 아저씨인가보다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 일본(1848~1934)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젊은 나이에 해군에 입대하여 보신 전쟁에 참가한 후, 7년 동안 영국에 유학했습니다. 
청일 전쟁에서는 "나니와" 함장의 직책을 맡아 황해 해전에서 활약하며, 국제법에 따라 고승호를 격침시키고 명성을 높였습니다. 
러일 전쟁에서는 연합함대를 이끌고 러시아의 뤼순 함대와 블라디보스토크 함대를 격파했으며, 일본해 해전에서는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쓰시마 해협에서 맞아 싸워, 해전사상 유례없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러일 전쟁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서쪽의 넬슨동쪽의 도고로 불리며 전 세계에 알려져 있습니다.

 

지피티형에게 침략전쟁을 이렇게 기념할 필요가 있는지 물어봤따 

역시나 이렇게 막 전시할만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긴 하다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일본 내에서 중요한 군사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업적은 일본 해군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그의 역할과 업적은 러일 전쟁이라는 침략 전쟁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국제적 및 역사적 관점에서 그의 업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도고 헤이하치로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그가 활동한 역사적 맥락과 그의 업적이 미친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일본 내에서는 영웅적 인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침략 전쟁의 일환으로 그의 업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합니다. 이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평가할 때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이게 제일 웃긴데.. 

동쪽의 넬슨이라고 하면서 넬슨 사진을 걸어두었따.. ㅋㅋ

넬슨 제독 | 영국(1758~1805)

1770년에 해군에 입대하여, 여러 해전에서 눈부신 전과를 올렸습니다. 
전투 중에 오른쪽 눈과 오른팔을 잃었지만, 그의 용맹한 정신은 다른 사람들을 압도했습니다. 
1805년 10월 21일 트라팔가 해전에서는 영국 함대를 이끌고 "영국은 각자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를 기대한다"는 신호를 내걸며,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 함대와 용맹하게 싸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적의 저격을 받아 불운하게도 기함 "빅토리호" 함상에서 전사했지만, 영국 해군 역사상 최고의 제독으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습니다.

 

 

 

일본은 참 이렇게 스탬프를 모을 수 있게 해두는게 인상적이다

이런게 있으니 아이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전시장을 돌아다닌다 

 

 

 

선장실인가보다 

화장실과 욕조가 있는게 인상적이다 

 

 

 

관짝 같은 곳에서 잠도 자나보다 

 

 

짬식당이다

나름 고급이다

 

 

근사하다

 

 

 

일본은 참 웃긴게 

여기에도 신사가 있다 오마이..

미카사 신사 三笠神社

일본의 군함에는 이세 신궁에서 대마(大麻)를 받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함내 신사에 모시고, 함명을冠하여 그 함의 무운을 기원하며, 또한 승무원들에게 수양의 양식을 제공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미카사 신사는 행운과 승리가 오래 지속되기를 기원하며 설립되었습니다.

 

 

군악대

 

그리고 과거 사진

장갑순양함 그로모보이호 승조 해군 군악대 装甲巡洋艦 グロモボイ号 乗組海軍軍楽隊

장갑순양함 그로모보이호는 러시아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러일 전쟁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함선에는 해군 군악대가 승선하여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감정이입해보면.. 침략자 모임 같은건가..

 

 

그리고 사병식당..

 

 

 

기념품을 참 잘 만드는데.. 분노버튼이..

 

 

 

마카사를 상징하는 모냥이라고 하는데 어째 모냥이..

 

 

 

한국도 나온다

 

 

이건 좀 재밋엇는데 VR기기로 배를 타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사모님께서도 선장님을 만나는 중

 

 

 

러일 전쟁과 사람들
러일 전쟁은 제정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일본이 독립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 자위 전쟁입니다. 
일본해 해전의 승리로 인해 러일 간의 강화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포츠머스 강화 조약이 체결되어 전쟁이 종결되었습니다. 
러일 전쟁은 일본의 독립을 지키고 국제적 지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열강에 의해 침탈되고 억압받던 아시아, 아랍 국가들, 나아가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던 동유럽 국가들을 각성시켰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선배들은 정치, 외교, 경제, 군사 각각의 분야에서 러일 전쟁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오 이거 좀 재밌는데 

 

단순히 러일 전쟁이 일본의 러시아 침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러시아는 정 반대로 생각하고 있나보다 

지피티형에 따르면 결국 비슷한 두놈끼리 싸운거라고 하나보다 

일본의 관점
1. 방위와 자위:
   - 일본은 러시아의 극동 지역에서의 확장을 저지하고, 한반도와 만주에서의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 일본은 자신을 제정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고 설명합니다.
2. 국제적 지위 강화:
   - 일본은 러일 전쟁을 통해 서양 열강들과 대등한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 전쟁에서의 승리는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고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러시아의 관점
1. 제국주의적 확장:
   - 러시아는 극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만주와 한반도에서의 세력을 확장하려 했습니다.
   - 러시아는 만주와 한반도를 자국의 영향권에 두기 위해 일본과 충돌했습니다.

국제적 관점

1. 제국주의적 충돌:
   - 러일 전쟁은 두 제국주의 국가 간의 충돌로, 양국 모두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습니다.
   - 전쟁은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놓고 벌어진 제국주의적 경쟁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지역적 안정과 불안정:
   - 전쟁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의 불안정을 초래했으며, 이 지역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 전쟁 후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했으며, 이는 이후 한국의 식민지화로 이어졌습니다.

결론
러일 전쟁의 성격과 목적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자국의 방위와 국제적 지위 강화를 위해 전쟁을 벌였다고 주장하지만, 국제적 관점에서는 두 제국주의 국가 간의 충돌로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일본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는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고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의 불안정을 초래했으며, 이후 일본의 제국주의적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우에무라 사령장관
우에무라 중장이 이끄는 제2함대는 일본 주변 해역에서 활동하는 블라디보스토크 함대를 포착하려고 노력했으나, 그 성과 없이 다수의 선박이 격침되자 국민의 분노는 우에무라 사령장관에게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당한 국민의 비난에 분노한 학생들이 우에무라 장군을 찬양하는 군가를 만들었습니다.

일본 근해를 위협하는 블라디보스토크 함대

블라디보스토크 함대는 1등 순양함 3척을 주력으로 하여, 쓰시마 주변 지역뿐만 아니라, 쓰가루 해협을 지나 이즈 제도 해역에까지 출몰하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중립국의 화물선과 수송선을 나포하고 격침시켜 해상 교통을 불안에 빠뜨렸습니다.

울산 해전
쓰시마 동쪽 해역을 순찰 중이던 우에무라 중장이 이끄는 제2함대는 8월 14일, 뤼순 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남하하는 블라디보스토크 함대를 포착했습니다. 
5시간에 걸친 포격전 끝에 "류리크"를 격침시키고, "러시아"와 "그로모보이"에 큰 피해를 입혀 블라디보스토크 함대를 격멸했습니다.

 

뭐 둘다 나쁜놈이네.. 왜 우리 앞바다에서 니들이 싸우냐 ㅠ

 

 

 

직접 이렇게 배를 운전해볼 기회도 있다 

 

 

 

밖으로 나왔다 복잡 미묘한 심정이다 

 

 

 

포탄을 올렸다 내려봤다도 할 수 있따

코도모가 매우 좋아했따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데 일본에 살면 이런게 참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게 쉽지 않으면서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돌이켜볼 기회도 된다 

 

 

 

포탄은 인기 만점

 

이렇게 미카사는 끝났다

꽤나 커서 보는데 은근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도 한 여름에 전시공간은 시원해서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요코스카는 참 미국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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