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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바티칸처럼 세금 없는 나라가 될 수 없을까? - 마쓰시타가 꿈꿨던 무세금 국가론의 현실

by fastcho 2025.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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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바티칸처럼 세금 없는 나라가 될 수 없을까? - 마쓰시타가 꿈꿨던 무세금 국가론의 현실

바티칸에는 세금이 없다. 이렇게 시작하는 닛케이 신문의 오쿠무라 시게자부로 상급논설위원의 칼럼이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과연 세금 없이 국가가 운영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를 통해 바티칸의 비밀스러운 재정 운영 방식과 일본의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꿈꿨던 무세금 국가론, 그리고 현재 일본 정치권의 소비세 논쟁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세금 없이 운영되는 바티칸의 비밀

지난 4월에 별세한 전 교황 프란치스코는 추기경들의 부동산 투자 비리 등에 직면해 바티칸 재정의 건전화와 투명화에 노력했습니다. 그 성과로 공개된 2022년 수지 보고서에 따르면, 바티칸의 수입은 관련 90개 기관의 연결 기준으로 7억3950만 유로(약 1조 1000억원)에 달했습니다2.

어떻게 세금 없이 국가를 운영할 수 있을까요? 내역을 보면 대학이나 병원의 사업 수익, 부동산 및 금융자산 운용 이익 등이 65%로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나머지는 전 세계 14억 명의 가톨릭 신자들의 기부와 헌금이 30%, 연간 약 700만 명이 방문하는 바티칸 미술관과 바티칸 은행의 수익이 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919.

바티칸 은행(IOR)은 2022년에 2960만 유로의 순이익을 올렸는데, 이는 전년도 1810만 유로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입니다1619. 또한 관세도 없어 이탈리아 로마시에 완전히 둘러싸인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생활필수품을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국경 왕래는 자유롭고 세관도 없습니다.

마쓰시타의 무세금 국가 구상, 실현 가능했을까?

실은 일본에도 무세금 국가를 구상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전기산업(현 파나소닉 홀딩스)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입니다711.

"예를 들어 매년 국가 예산의 10%를 적립해 나간다고 합시다. 100년간 계속하면 적립금의 이자만으로도 예산을 충당할 수 있게 되어 세금이 필요 없게 됩니다."

1978년 요미우리 문화 강연회에서 이런 주장을 했던 마쓰시타의 아이디어는 얼마나 현실적이었을까요? 기사에 따르면, 시험 삼아 '인플레이션율 제로, 예산액도 고정'이라는 전제로 AI에게 계산시켰더니, 명목금리 2.43% 세계에서는 이론상 마쓰시타의 이상이 실현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인플레이션도 있고, 그에 맞는 높은 경제성장률도 필요합니다. 단년도주의에 얽매이지 말고, 예산을 남길 정도의 기개로 국가를 경영하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습니다.

노다 요시히코의 입장 변화, 정치적 계산인가 신념의 변화인가?

흥미롭게도 마쓰시타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최근 '주류·외식을 제외한 식료품'에 대한 소비세 경감세율을 8%에서 0%로 인하하는 방침을 내놓았습니다3. 기본적으로 1년간이지만, 한 번 연장도 가능하게 한다고 합니다.

노다는 1980년에 마쓰시타가 설립한 마쓰시타 정경숙의 1기생입니다. '신(神)'의 가르침을 받은 인물 중 한 명이죠. 그런데 13년 전에는 총리로서 세금과 사회보장의 일체 개혁을 주도하며, 소비세를 5%에서 10%로 인상하는 것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단언했었습니다.

작년 입헌민주당 대표 선거에서도 "쉽게 감세해서는 안 된다"며 재정규율을 강조했는데, 주장의 일관성보다는 당내 융화라는 당리를 우선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소비감세론에서는 국민민주당이나 일본유신회가 선행하고 있었죠.

일본의 재정 현실과 소비세 감세의 딜레마

소비세에 국한된 감세는 마쓰시타의 무세금 국가론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예산을 남겨 10%씩 적립하기는커녕, 세입의 4분의 1은 빚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일본 재정의 현실입니다.

일본 정부의 2025년도 예산에서 소비세 수입은 약 25조 엔입니다6. 대략 10% 부분이 20조 엔, 8%의 경감세율 부분이 5조 엔이라고 가정하면, 소비세율 전체를 5%로 낮추는 국민민주당 안은 약 12조 엔의 감수입이 됩니다. 식품 등에 적용되는 경감세율 부분을 제로로 하는 경우, 입헌민주당 안의 1년간이면 5조 엔, 유신회 안의 2년간이면 10조 엔이 됩니다.

한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연금, 의료, 개호, 아동·육아 등의 사회보장급부비는 2025년도 약 140조 엔에서 15년 후인 2040년도에 약 190조 엔으로 매년 약 3.3조 엔씩 증가합니다8. 저출산 고령화로 사회보장을 지탱하는 현역 세대의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선거를 위해 소비세를 5조 엔이나 10조 엔이나 삭감할 수 있을까요?

한국과 일본, 세금과 재정의 공통 과제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비 증가와 재정 건전성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의 2024년 예산은 약 656.6조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이며, 국가채무는 GDP 대비 5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일본이 직면한 문제는 몇 년 뒤 한국의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죠.

특히 재정 건전성과 복지 확대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할지는 양국 모두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일본의 소비세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인 생각: 꿈과 현실 사이에서

마쓰시타의 무세금 국가론은 분명 매력적인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죠. 인플레이션, 경기 변동, 국제 정세의 변화, 그리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위기들까지... 이런 상황에서 100년 동안 꾸준히 국가 예산의 10%를 적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쓰시타의 주장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장기적 안목'과 '절제된 재정 운영'이라는 가치입니다. 우리는 당장의 인기나 선거 승리를 위해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정책들을 자주 봅니다. 일본의 야당들이 내놓은 소비세 감세안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겠죠.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인기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감 있는 재정 운영이 아닐까요? 바티칸처럼 세금 없는 나라는 될 수 없더라도, 최소한 미래 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물려주지 않는 나라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쓰시타가 이른바 장자번부(長者番付, 고액 납세자 순위)에서 신고소득이 통산 10회나 전국 1위를 차지했습니다. 소득세와 개인주민세를 합쳐 과세소득의 90%가 넘었던 197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보다도 세금을 많이 납부했던 마쓰시타였기에, 사람들이 그의 무세금 국가론에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일본은 바티칸이 될 수 없고, 마쓰시타도 이제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우리가 계속해서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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