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시트 전략이 다르네? 일본 스타트업을 억누르는 '영업권 상각'의 함정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일경)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영업권(のれん) 상각 제도'가 꼽혔는데요. 사실 이 문제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오늘 상세히 알아보려 합니다.
한일 스타트업 '엑시트' 전략 비교
일본은 2022년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2027년까지 스타트업 투자액을 8000억 엔에서 10조 엔으로 확대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습니다16. 그런데 일본 스타트업의 가장 큰 특징은 '출구전략(엑시트)'이 신규 주식 공개(IPO)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2020년 기준 일본의 스타트업 엑시트는 IPO가 76%, M&A가 24%에 불과했죠15.
반면 미국은 M&A가 90%를 차지하며 유럽도 67%가 M&A를 통한 엑시트를 선택합니다1. 더 충격적인 수치는 한국의 현실인데요, 미국은 스타트업의 25.7%가 엑시트에 성공하는 반면, 한국은 고작 0.1%만이 성공한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14.
그런데 왜 일본과 한국 모두 M&A를 통한 엑시트가 적고, 특히 일본은 IPO에 편중된 출구전략을 갖고 있을까요?
성장의 발목 잡는 '영업권 상각' 제도
그 답은 의외로 회계 기준에 있었습니다. 일본 회계 기준에서는 기업 인수합병 시 발생하는 '영업권(のれん)'을 20년 이내에 정기적으로 상각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23. 영업권이란 쉽게 말해 인수 기업이 제시한 매수가와 피인수 기업의 순자산 간의 차액을 말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국제회계기준(IFRS)과 미국 기준에서는 영업권을 정기적으로 상각하지 않고 매년 손상 테스트만 시행하면 됩니다18. 그러나 일본 기준에서는 이 영업권을 반드시 상각해야 하므로, 인수합병을 진행하면 그 후 수년 동안 기업의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경제동우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73.6%가 "영업권의 정기 상각이 M&A를 검토할 때 장애가 된다"고 답했고, 45.8%는 "영업권 상각 부담 때문에 실제로 M&A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26. 이는 스타트업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대기업들이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인수하려는 의지를 꺾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로스 시장의 강화된 상장 유지 기준
도쿄증권거래소는 최근 스타트업이 주로 상장하는 '그로스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도입했습니다. 2030년부터는 상장 후 5년이 지나면 시가총액이 100억 엔 이상이 되어야 상장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10. 현재 그로스 시장에 상장된 615개 기업 중 무려 446개 기업이 시가총액 100억 엔 미만이라고 하니, 약 72%의 기업이 퇴출 위기에 놓인 셈입니다8.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 증시에 '작은 상장' 기업이 너무 많고, 상장 후에도 성장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스타트업의 주요 엑시트 전략이 IPO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내 스타트업의 엑시트 비율은 평균 2.3% 정도로 매우 낮습니다19. 게다가 미국에서는 엑시트의 97%가 M&A인 반면5, 한국은 비율조차 적은 실정입니다.
일본이 직면한 '영업권 상각'의 문제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도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했지만, 많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여전히 영업권을 상각하는 회계처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출구전략이 다양해져야 합니다. IPO만이 능사가 아니라, M&A를 통한 엑시트도 활발해져야 더 많은 투자금이 유입되고, 더 많은 창업가가 도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회계 제도의 개선과 함께 M&A 문화를 장려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일본은 이미 영업권 상각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도쿄에서 한 잔 커피를 마시며 일본 경제신문을 읽고 있자니, 한국과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은 함정에 빠져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개선의 첫걸음이라면, 이제 우리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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