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기업 지배구조의 새로운 갈등: 해외 주주 vs 창업가족의 충돌
일본 기업 지배구조 개혁의 최전선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트로이 목마처럼 일본 기업들의 내부로 스며든 해외 투자자들이 이제는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며 기존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1. 바로 토요타 자동직기(豊田自動織機) 매수 사건이 그 중심에 있다.
해외 주주들의 집단 반발: "가격이 너무 싸다"
영국의 투자펀드 아세트 밸류 인베스터즈(AVI)를 필두로 해외 주주들이 토요타 진영이 제시한 TOB 가격 1주당 1만6300엔이 '본원적 기업가치보다 낮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1.
특히 주목할 점은 AVI의 사카이 가즈나리 일본조사책임자가 지적한 바다1. **토요타 계열사가 토요타직기 주식의 40%를 보유하는 상황에서 소수주주를 포함한 '주주 공동의 이익에 강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일본 특유의 계열사 간 지분 교차보유 구조가 소수주주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직격탄이다.
가격 산정 과정의 문제점: "충분한 검토 없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해외 투자자들이 제기하는 가격 산정 과정의 문제점이다1. AVI는 토요타직기와 토요타 부동산 간의 '교섭 횟수가 제한적이었다'며, 이사회가 더 나은 매수 제안 가능성을 탐색하는 '마켓체크'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우려를 표명했다1.
특히 토요타직기가 자동차, 물류 등 복수 사업을 운영하는 만큼 사업가치를 적산해서 전체 가치를 평가하는 '섬 오브 더 파츠 분석' 등 다양한 수법을 채용했어야 했다는 지적은 일본 기업들의 기업가치 평가 방식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로 받아들여진다120.
주가 움직임이 말해주는 것
숫자로 보면 더욱 명확하다. 토요타직기 주가는 4월 25일 1만3225엔에서 발표일인 6월 3일 1만8400엔까지 상승했지만, TOB 가격은 오히려 이보다 낮은 1만6300엔으로 책정되었다1. 심지어 6월 3일 시점에서도 PBR이 1배 정도로 과열감을 동반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본원적 기업가치를 하회하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1.
아시아 투자자들의 등장: 연합 전선 구축
영국계 투자자들만이 아니다. 홍콩의 투자펀드 오아시스 매니지먼트도 6일 토요타와 토요타직기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며 TOB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11. 오아시스의 세스 피셔 최고투자책임자는 TOB 가격을 '전혀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핵심 사업을 현저히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가격 산정 평가의 전제도 명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11.
영국의 제나 애셋매니지먼트도 '이것은 토요타 그룹을 위한 거래이지, 토요타직기 주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2만엔 이상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다2.
한국인이 보는 일본의 기업 지배구조 문제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보면 묘하게 기시감이 든다. 한국에서도 재벌가와 해외 투자자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13.
한일 양국의 유사한 딜레마
한국에서는 **강성부씨의 KCGI가 한진그룹을 향해 '조양호 일가의 전제군주 같은 행동으로 대표되는 형편없는 기업통치가 원인'**이라며 격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13.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 기업의 상징인 토요타 사안에서 소수주주 이익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시각으로 실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1.
흥미롭게도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좌익적 정책이 재벌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했다면,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의 거버넌스 개혁이 해외 투자자들의 활동 무대를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정반대의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1315.
창업가족의 반박: "그룹다움을 되찾기 위해"
한편 **토요타 장남씨는 '토요타 그룹이 다움을 되찾기 위해서'라며 개인 출자 이유를 설명했지만, '이제 와서 토요타 그룹이 창업가족 것이라는 건 아니다'**라고 다소 방어적인 입장을 보였다1.
이는 현대적 기업 지배구조와 전통적 패밀리 비즈니스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를 보여준다19. 일본의 대표적 패밀리 기업들인 토요타, 산토리, 기코만 등이 가족의 가치관을 비즈니스에 반영시키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되어 왔지만19, 이제는 해외 투자자들의 단기적 수익 극대화 압박과 충돌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 기업 지배구조 개혁의 한계 노출
이번 사건은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 2015년 코퍼레이트 거버넌스 코드 도입 이후 일본 기업 지배구조 개혁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15.
형식적 개혁의 한계
**'위에서 지시받아서 형식적인 체제를 정비한 면이 남아 있으며, 상장기업의 이사회가 실질적인 거버넌스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가 하면 아직 전혀 불충분하다'**는 AVI의 지적이 핵심을 찌르고 있다10.
실제로 **GMO도 토요타직기에 대해 '토요타 그룹 관련회사에 의한 지분 상호보유로부터 위계질서가 생겨나고, 수탁자로서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멘탈리티를 낳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12.
모빌리티 컴퍼니 전환의 이면
토요타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에서 '모빌리티 사회를 만드는 회사'로의 풀 모델체인지를 선언한 배경에는 이러한 지배구조 문제도 숨어 있다21. '행복의 양산'이라는 미션을 내세우며 다양한 이업종과의 제휴를 통해 새로운 가치 창출을 추진하고 있지만21, 정작 주주가치 창출에서는 해외 투자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개인적 단상: 변화의 바람 vs 전통의 무게
일본에서 생활하며 지켜본 이번 사건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일본적 가치 사이의 충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해외 투자자들이 '적정가격 실현'을 외치는 반면, 창업가족은 '그룹다움'을 강조하는 대조적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갈등을 겪어온 만큼, 이번 일본의 사례는 동아시아 기업 지배구조의 공통된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과연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거버넌스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토요타직기 사건의 결말이 일본 기업 지배구조 개혁의 향후 방향성을 좌우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해외 투자자들의 연합 전선이 얼마나 강력한 압박을 가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일본 기업들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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