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PD의 일본 경제: 반도체 전쟁, 혼다의 추락, 그리고 역사의 아이러니
'조PD의 일본 경제'입니다. 오늘 다룰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장대한 역사 드라마 같습니다. 주인공은 물론 일본 경제고요. 세 가지 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막은,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겠다며 국가의 명운을 건 '최후의 도박'에 나선 일본 반도체 산업의 이야기입니다. 과연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두 번째 막에서는 옆 나라 중국과 일본의 운명이 기묘하게 뒤바뀌는 '역사적 금리 역전' 현상을 파헤쳐 봅니다. 마치 지쳐 쓰러진 아킬레스를 거북이가 추월하는 듯한, 경제학 교과서에나 실릴 법한 아이러니한 순간이죠. 마지막 세 번째 막은 비극입니다.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자 '3대장'이었던 혼다가 처참하게 추락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바로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위기,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일본 경제의 맨얼굴입니다. 그럼, 첫 번째 막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 첫 번째 토픽: 일본 반도체,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도박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부품이 아닙니다. '산업의 쌀'을 넘어, 한 국가의 흥망을 결정짓는 '경제 안보의 심장'이죠.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하다 처참하게 몰락했던 일본이, 바로 이 반도체 산업에 국가의 모든 것을 건 거대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라피더스(Rapidus)'입니다. 이건 단순한 기업 투자가 아닙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왕년에 내가 말이야..."를 외치며 모든 것을 건 재기전(再起戰) 선언입니다.
라피더스의 계획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대담합니다. 홋카이도 치토세시에 2027년 두 번째 공장을 착공해서, 2029년부터는 무려 1.4나노 및 1나노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무모한 계획인지는 경쟁사들과 비교해보면 명확해집니다.
| 회사 | 최첨단 공정 양산 목표 |
| TSMC | 2028년 (1.4나노) |
| 삼성전자 | 2027년 (1.4나노) |
| 라피더스 | 2029년 (1.4나노) |
이 표를 보면 "어? 생각보다 별 차이 안 나는데?"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이제 막 운전면허를 딴 학생이 F1 레이스에 출전해서 "2년 뒤엔 나도 챔피언"이라고 선언한 격입니다. TSMC와 삼성전자는 수십 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미세공정 기술을 쌓아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입니다. 반면 라피더스는 양산 경험이 전무하죠.
이 '수율' 싸움은 그야말로 지옥인데, 업계 거인인 삼성이나 인텔조차 첨단 제품의 수율을 끌어올리느라 피눈물을 흘리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양산 경험이 전무한 라피더스가 단번에 해내겠다는 겁니다.
그럼 이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가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그야말로 돈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7년까지 누적 지원금만 약 2.9조 엔에 달할 전망입니다. 이건 '기술 개발'을 넘어, '돈으로 시간을 사려는' 전략입니다. 기술 격차를 세금으로 메우겠다는,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그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도박인 셈이죠.
이 도박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판도를 뒤흔들려는 시도입니다. 만약 일본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한국 경제는 물론 전 세계 기술 패권 경쟁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겁니다. 일본의 반도체 부활 시도는 지금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선, 아슬아슬한 고위험-고수익 베팅입니다.
미래 기술에 거대한 베팅을 하고 있는 일본이지만, 바로 옆 나라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과거와는 정반대의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2. 두 번째 토픽: '일본화'되는 중국? 사상 최초로 역전된 일-중 장기금리
장기금리는 한 국가 경제의 종합 건강검진 성적표와 같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물가는 안정적인지, 나랏빚은 감당할 만한 수준인지에 대한 시장의 냉정한 평가가 이 숫자 하나에 담겨있죠. 그런데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경제 상식을 뒤엎는 '역사적인 대사건'이 터졌습니다. 바로 일본과 중국의 장기금리가 역전된 겁니다.
핵심 사실부터 말씀드리죠.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한때 1.84%까지 상승한 반면, 중국은 1.83%에 머물렀습니다.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2000년 9월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건 마치, 거북이가 지쳐버린 아킬레스를 추월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오랫동안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의 상징이었던 일본의 금리가, 고성장의 아이콘이었던 중국을 넘어선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본 vs 중국
이 역사적 역전이 왜 발생했는지, 두 나라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이유는 명확해집니다.
- 일본 (금리 상승 이유)
- 공격적 재정 확장: 라피더스 같은 거대 프로젝트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다카이치 정부의 공격적인 재정 확장 정책 때문에, 앞으로 국채 발행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국채가 흔해지면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죠.
- 인플레이션 압력: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 전후를 기록하며 '만성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 중국 (금리 하락 이유)
- 디플레이션 공포: CPI가 0%에 가까워지며 물가가 오르지 않는, 오히려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후유증이 경제 전체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 밸런시트 불황: 이것이 바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밸런시트 불황'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기업과 가계가 미래를 위한 투자나 소비 대신, 빚 갚는 데에만 집중하는 현상이죠. 일본이 90년대에 겪었던 바로 그 모습입니다.
- 추가 금리 인하 기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중앙은행(중국인민은행)이 앞으로도 금리를 더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에 팽배합니다.
이 현상이 품고 있는 '역사적 아이러니'는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중국이 과거 일본이 겪었던 '잃어버린 10년'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계 경제에도 큰 위험입니다. 내수 시장이 죽어버린 중국이 팔지 못하고 남는 제품들을 해외에 헐값으로 밀어내기 시작하면, 전 세계적인 무역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두 아시아 경제 대국이 정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 이것이 바로 일-중 금리 역전의 본질입니다.
이렇게 거시 경제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는 동안, 일본 산업의 상징이었던 한 거대 기업 역시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3. 세 번째 토픽: 혼다의 눈물, 일본 자동차 '3강' 시대의 종언
오랫동안 일본 자동차 산업은 도요타, 닛산, 그리고 혼다라는 '3강' 구도가 굳건히 지켜왔습니다. 이는 일본 제조업의 자부심 그 자체였죠. 그런데 최근, 이 구도가 와르르 무너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혼다가 일본 내 4위로 추락한 겁니다. 이건 단순한 순위 변동이 아닙니다.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데이터는 냉혹합니다. 혼다의 2025년 하반기 세계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4%나 급감한 166만 대로 예상됩니다. 반면 스즈키는 180만 대로 2위 자리를 꿰찼죠. 2005년 이후 무려 20년 만에 처음으로 혼다가 3위권 밖으로 밀려난 겁니다.
무엇이 기술의 혼다를 무너뜨렸을까요?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치명적 공급망 관리 실패: 가장 결정적인 패착은 치명적인 공급망 관리 실패였습니다. 혼다는 특정 반도체를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중국 자본의 '넥스페리아' 한 곳에만 의존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 회사의 출하가 멈추자 북미 공장이 그대로 멈춰버린 겁니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따로 있습니다. 한 분석에 따르면, 설령 반도체 부족 사태가 없었더라도 혼다는 스즈키에 간발의 차로 뒤처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건 단순히 운이 나빴던 게 아니라, 이미 펀더멘털에서부터 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반도체 문제는 이미 기울어가던 배에 난 결정적인 구멍이었을 뿐이죠.
- 경쟁 환경의 변화 (스즈키의 약진): 혼다의 실패는 경쟁자인 스즈키의 성공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스즈키는 일찌감치 경쟁이 치열한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대신 '인도'라는 성장 시장에 모든 것을 걸었죠. 그 결과 인도 시장 점유율 40%라는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며 체급을 키웠습니다. '선택과 집중'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 구조적인 문제: 사실 '3강' 체제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닛산 역시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죠. 도요타를 제외한 나머지 두 강자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최근 혼다와 닛산이 생존을 위해 협력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도, 이들이 얼마나 깊은 위기감에 빠져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소식을 접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혼다와 닛산이 휘청이는 동안,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글로벌 시장에서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왔습니다. 일본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한국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혼다의 추락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도,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저지른 전략적 실책 하나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말이죠.
4. 클로징
오늘 우리는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일본 경제의 현재를 들여다봤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연결됩니다.
일본 경제는 지금,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미래에 모든 것을 거는(라피더스) 동시에, 과거 자신들이 걸었던 길을 중국이 따라오는 것을 지켜보고(금리 역전) 있으며,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현실(혼다의 추락)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래를 향한 거대한 도박과 과거의 망령이 공존하는 기묘한 상황. 이것이 2025년 일본 경제의 자화상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일본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카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는데, 정작 국민차 만드는 법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과연 시동은 걸릴까요?
지금까지 '조PD의 일본 경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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