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은행들이 대비하는 '불확실성의 시대' - 한국 금융은 무엇을 배워야 하나

미국의 상호관세 정책이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불확실성이 글로벌 경제를 덮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비하고 있을까요?

일본 니케이신문 '경제교실'에 실린 '격변하는 은행경영' 시리즈에서 동양대학교 노자키 히로나리 교수의 분석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내용이 한국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에게도 중요한 이유는, 우리 역시 동일한 글로벌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으며, 일본과 유사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 시스템 불안, 일본은 괜찮을까?

미국의 관세 정책은 수출 산업뿐 아니라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의 자금줄이 되는 은행들은 정책 대응을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인 자금 공급으로 거래 기업들의 자금 흐름 악화에 대응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은행 자체가 경영난에 직면한다면 위기는 더욱 증폭될 수 있습니다.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예금 인출 사태나 단기 금융시장 기능 불전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

둘째, 은행이 보유한 대출이나 유가증권 등 자산 가치 훼손에 따른 자본 부족

작년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은 금리 상승기에 보유 채권의 손실 확대가 우려되면서 예금 인출 사태로 발전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현재 국내 은행의 **예대율(대출을 예금으로 나눈 비율)이 61%**로 대출보다 훨씬 많은 예금을 보유하고 있어 1998년 3월 말 98%였던 상황과는 다릅니다.

더 결정적인 차이는 예금보험제도입니다.

미국은 예금 종류와 관계없이 동일한 상한액까지만 보험으로 커버하지만, 일본은 무이자 결제용 예금에는 무제한으로 예금보험이 적용됩니다.

이는 은행 신뢰가 하락해도 무이자 계좌로 자금을 이동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은행 창구나 ATM에 사람들이 몰리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금융 안전장치 비교

한국도 일본과 유사하게 은행 시스템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예금보호한도를 현행 5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4.

이는 2001년 이후 24년간 유지해온 예금보호한도를 경제규모 성장과 예금 자산 증가를 반영해 상향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처럼 결제용 무이자 예금에 대한 전액 보호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무이자 결제용 예금 전액 보장 제도는 2005년 4월부터 시행되었으며, 이는 '무이자, 요구불, 결제 서비스 제공 가능'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예금에 적용됩니다12.

한국 금융당국도 금융 불안 상황에 대비한 예금자 보호 강화 방안을 더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 규제 측면에서의 안정성

자본 부족 측면에서는 자기자본비율 규제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새로운 국제 규칙인 '바젤 3'가 시행된 후, 일부를 제외한 일본 국내 기준 은행들의 필요 자본 비율에는 유가증권 평가손익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가 하락이 감손 처리를 요구하지 않는 한, 평가손이 규제 위반으로 직결되지 않습니다.

한국의 경우, 2024년 9월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6.9%로 보고되었으며, 이는 2024년 6월의 16.6%보다 상승한 수치입니다11.

한국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 불안에 대비해 지속적으로 자기자본비율을 관리하고 있으나, 평가손익 반영 방식에 있어서는 국제 기준을 따르는 은행과 국내 기준을 적용받는 은행 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 은행업계가 직면한 구조적 과제

그러나 노자키 교수는 단기적인 시스템 안정성보다 장기적인 구조적 변화에 더 주목합니다.

특히 기업 금융 구조의 변화가 일본 지방은행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일본 법인기업통계에 따르면, 기업 전체(금융·보험 제외)의 자기자본비율이 2003년도 28%에서 2023년도 42%로 개선되었습니다.

은행 대출 비중은 감소하고, 무차입 기업도 증가하고 있어, 예금을 대출로 연결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전통적인 은행 모델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수익 구조를 분석해보면, 업무 총이익 중 금리 관련 수익이 차지하는 비율(최근 10년 평균)은 **주요 대형 은행이 48%인 반면, 지방은행은 89%**를 차지합니다.

지방은행의 전통적인 상업은행 모델은 명백하게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 은행들의 비이자수익 비중은?

한국의 상황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25년 2월 28일 한국금융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시중은행의 영업이익에서 비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대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6.

오래 전부터 은행권의 예대금리차에 기댄 이자이익 중심의 순익 성장에 대한 비판이 높았고, 금리 인하기에 접어들면서 비이자이익 확대를 통한 수익성 확보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높은 이자이익 의존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은행은 60% 가까운 비이자이익 성장으로 영업이익 대비 비중이 주요 시중은행 중 가장 높았고, 카카오뱅크는 수수료 수익과 플랫폼 수익, 투자금융자산 수익 성장에 힘입어 전체 영업수익에서 비이자수익이 30%를 차지했습니다.

은행의 새로운 방향: '비금융 서비스'와 '정보의 경제'

노자키 교수는 일본 은행들의 생존 전략으로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첫째, 경영 통합을 통한 규모의 경제 추구입니다.

경영 규모와 수익성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자산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코어 이익률'(코어 이익을 경비로 나눈 값)이 증가하는 관계가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업 금융 구조 변화를 고려하면, 단순히 규모의 경제만 추구하는 통합은 효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기업의 실제 니즈에 맞는 비금융 서비스 제공입니다.

일본 금융청이 중소기업 약 3만 사에 실시한 2024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제는 경영자를 포함한 인재 부족 등 인적 자본 문제였습니다.

재무 개선이나 자금 조달 과제는 우선순위가 낮았고, 은행과 충분한 과제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은 비율도 높았습니다.

기업이 중시하는 과제 해결에는 사업 승계, IT를 통한 업무 효율화, 인재 알선 등 비금융적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한국의 은행들도 비금융서비스로 눈을 돌리는 중

한국의 은행들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 BNK부산은행은 국내 중소·중견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기관인 한국M&A거래소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7.

이 협약을 통해 M&A와 IPO 관련 정보·자문 제공, M&A 관련 교육 프로그램 운영, 전문 네트워크를 활용한 기업 매칭 지원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부산은행은 이번 협약이 지역 내 중소기업들의 원활한 승계와 지속적인 경영 기반 유지, 그리고 고용 안정과 지역경제 활력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보의 경제'가 핵심 경쟁력

노자키 교수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보의 경제'**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은행이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력입니다.

M&A 사업만 해도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 획득, 데이터를 활용한 제안, 조사·분석·가격 책정 수행 스킬 등 모두 정보력에 의존합니다.

경영 규모와 비은행 업무 능력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은행 그룹 연결과 단체 이익의 차이인 '연단차'에 주목했습니다.

은행의 자산 규모별로 비은행 관련 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을 산정한 결과, 자산 규모가 클수록 연결 당기 이익에서 연단차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이는 경영 통합을 통해 종합적인 정보력이 충실해진다는 기대를 반영합니다.

한국 금융권에 주는 시사점

일본의 상황을 살펴본 결과, 한국 금융기관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첫째, 금융 안정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무이자 결제용 예금 전액 보장 제도와 같은 안전장치를 검토해볼 만합니다.

둘째, 비이자수익 비중을 높이기 위한 비금융 서비스 확대가 시급합니다.

현재 한국 은행들의 비이자수익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며, 금리 인하기에 대비한 수익 다변화가 필요합니다.

셋째, 중소기업의 실제 니즈에 맞는 서비스 개발이 중요합니다.

자금 조달보다는 인재 확보, 사업 승계, IT 혁신 등을 지원할 수 있는 종합적인 서비스가 요구됩니다.

넷째, 정보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제휴나 통합을 고려해야 합니다.

단순한 규모 확대가 아닌,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견해: 한일 금융의 공통 과제와 기회

일본과 한국의 은행들이 직면한 문제는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두 나라 모두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시장 축소, 기업의 자금조달 다변화, 디지털 전환이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 속에서도 기회는 있습니다.

특히 한국 은행들은 일본보다 디지털 역량이 뛰어나고, 해외 진출에 더 적극적이라는 강점이 있습니다.

카카오뱅크와 같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이 이를 증명합니다.

앞으로 한국 은행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정보력 강화와 고객 니즈 중심의 비금융 서비스 확대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일본처럼 은행들이 비금융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지원책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은행은 단순한 자금 중개자가 아닌, 정보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거듭나야 생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로벌 경제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이러한 전환은 더욱 시급해지고 있습니다.

일본 은행권의 사례는 한국 금융기관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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