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PD의 글로벌 경제'입니다.
미국 건국 역사와 거의 함께했던 동전, 232살 먹은 1센트 '페니'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단순히 오래된 동전을 없애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 결정 뒤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어찌 보면 황당하고 지독하게 현실적인 경제적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오늘, 그 속사정을 탈탈 털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제: 동전 한 닢의 장례식 - 232살 페니의 퇴장
한 나라가 가장 작은 단위의 화폐를 없앤다는 것은 단순히 계산 단위를 바꾸는 조치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어디까지 밀려왔는지, 그리고 돈의 본질적 가치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화폐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이 결정의 전략적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요 외신들은 미국 조폐국(U.S. Mint)이 1793년부터 무려 232년간 생산해 온 1센트 동전, 즉 '페니(Penny)'의 마지막 주조를 마쳤다고 긴급 타전했습니다. 바로 지난 수요일, 필라델피아 조폐국에서 마지막 페니가 찍혀 나오는 장면은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듯했습니다.
이 결정의 핵심 이유는 한마디로 '비용 대비 가치'의 문제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1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실제 비용은 3.7센트입니다. 이건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밑지는 장사를,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마지막 동전이 찍혀 나오자 브랜든 비치 재무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우리는 납세자들의 돈 5,6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84억 원을 절약하게 될 겁니다."
1909년부터 페니 앞면을 지켜온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초상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동전은 단순한 화폐를 넘어 미국 역사의 일부였던 셈입니다.
동전 하나 없애는 게 뭐 대수냐 싶지만, 이건 마치 우리 경제의 체온계에서 가장 낮은 눈금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이제 1센트로는 잴 수 없을 만큼 우리 돈의 가치가 뜨거워졌다는 신호죠.
정부가 동전 만드는 돈은 아끼기로 했는데, 정작 정부 전체의 돈 씀씀이가 멈췄던 '셧다운' 사태는 더 황당한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셧다운은 끝났지만, 이제는 경제 데이터가 멈춰버린 안갯속 상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두 번째 주제: 안갯속 미국 경제 - 사상 최장 셧다운이 남긴 '데이터 공백' 사태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 데이터는 길을 밝히는 등대와 같습니다. 중앙은행은 이 데이터를 보고 금리를 결정하고, 기업은 투자를 계획하며,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를 조정합니다. 그런데 이 등대가 갑자기 꺼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이 바로 '데이터 공백' 사태의 전략적 심각성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최장 기간인 43일간의 연방 정부 셧다운을 종료하는 지출안에 서명하면서 급한 불은 껐습니다. 하지만 셧다운이 남긴 가장 심각한 경제적 후유증은 바로 '데이터 공백(Data Blackout)'입니다. 백악관은 공식 발표를 통해 10월의 고용 보고서와 인플레이션 보고서가 "사실상 결코(likely never)" 발표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 달 치의 경제 성적표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 '깜깜이' 상황은 정책 결정자들을 극심한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안갯속에서 운전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속도를 줄여야 한다."
연준조차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고백입니다. '데이터 도그(data dogs)'라 불리는 경제학자들은 정부 데이터 없이 경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유의 여신상 방문객 수 같은 대안 지표를 찾아 헤매는 웃지 못할 촌극을 벌여야 했습니다. 시카고 연은 총재 오스탄 굴스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습니다. "데이터 도그의 핵심 규칙 중 하나는, 바닥에 떨어진 모든 데이터를 킁킁거리고 냄새 맡는 겁니다. 그게 음식일 수도 있으니까요." 정말 절박함이 묻어나는 비유죠.
이번 셧다운은 단순히 경제학자들만 곤란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항공편 지연, 수백만 가구의 식량 지원 위협 등 일반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었습니다. 2019년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식의 셧다운은 미국 경제에 3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2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데이터 공백이라는 짙은 안갯속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또 다른 전쟁이 있습니다. 바로 미중 기술 패권의 최전선, AI 반도체 전쟁입니다.
세 번째 주제: 제재를 우회하는 AI 칩 -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엔비디아의 뒷문
AI 반도체는 21세기의 '석유'로 불립니다. 이 자원을 통제하는 국가가 미래 기술 패권을 쥘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가 어떻게 교묘하게 우회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번 사례는, 미중 기술 전쟁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바로미터라 할 수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심층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2022년부터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구매를 금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한 AI 기업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데이터 센터를 통해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인 '블랙웰(Blackwell)' 약 2,300개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교묘한 거래의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판매: 엔비디아는 서버 파트너인 미국 기업 'Aivres'에 칩을 판매합니다. 그런데 Aivres의 모회사 지분 3분의 1은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 'Inspur'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 구매: 인도네시아 통신사 'Indosat'이 Aivres로부터 약 1억 달러(약 1,400억 원)에 엔비디아 GB200 서버 랙 32개를 구매합니다. 이 서버 랙 하나에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블랙웰 칩이 72개씩 들어있습니다.
- 최종 고객: Indosat은 Aivres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에 기반을 둔 AI 스타트업 'INF Tech'를 최종 고객으로 확보합니다.
놀랍게도 이 방식은 현행 미국 수출 통제법을 직접적으로 위반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제재에 얼마나 큰 허점이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줍니다.
이는 마치 "정문은 굳게 잠갔지만, 담장 밑에 개구멍이 뚫려있는" 상황과 같습니다.
이 사건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우리 기업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진짜 위험은 직접적인 제재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복잡한 '두더지 잡기 게임'에 휘말리는 것 아닐까요? 우리 기술이 이 거대한 뒷문 전쟁에서 자신도 모르는 졸(pawn)이 되지 않도록, 공급망을 어떻게 감사하고 관리해야 할까요?
결국 세상은 우리가 아는 규칙대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빈틈을 파고드는 자와 그 빈틈을 막으려는 자의 싸움, 이것이 바로 글로벌 경제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조PD의 글로벌 경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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