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PD의 일본 경제: 역대급 돈 잔치와 멧돼지 사냥꾼
'조PD의 일본 경제'입니다.
여러분, 파티는 좋은데, 누가 돈 낼지 정해지지 않은 파티만큼 찝찝한 게 또 있을까요? 지금 일본이 역사상 가장 큰 돈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무려 1,100조 원짜리 파티입니다. 과연 이 어마어마한 파티 비용, 마지막에 청구서는 누구에게 날아갈까요? 오늘 그 속사정을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제: 122조 엔의 도박, 일본의 역대급 예산안 분석
일본 다카이치 내각이 '강한 경제'를 실현하겠다며 내놓은 2026년도 예산안, 그 규모가 무려 122조 3,092억 엔(약 1,100조 원)에 달합니다. 사상 최대 규모죠. 내용을 뜯어보면 이게 '강한 경제'를 위한 투자일지, 아니면 '위험한 도박'일지 아슬아슬한데요.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세 군데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회보장비가 39조 559억 엔(약 351조 원)입니다. 고령화와 물가 상승 때문에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계속 늘어나는 돈이죠. 딱 월급의 상당 부분이 할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로 먼저 빠져나가는 상황입니다. 개혁 없이는 답이 안 보이는데, 이번에도 개혁은 뒤로 미뤄졌습니다.
둘째, 국채비가 31조 2,758억 엔(약 282조 원)으로 사상 처음 30조 엔을 돌파했습니다. 이건 쉽게 말해 빚 갚는 돈입니다. 더 심각한 건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마치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자율이 확 올라버려서,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도 벅찬 상황과 똑같습니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예산 편성의 기준이 되는 장기금리 상정치를 기존 2.0%에서 3.0%로 대폭 올려 잡았습니다. 카드 돌려막기 비유가 더는 농담이 아니게 된 거죠.
셋째, 방위비가 9조 353억 엔(약 81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적의 거점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도입에만 1조 엔 가까이 쏟아붓는 등, 공격 능력 강화에 막대한 돈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 (So What?)
일본 정부는 이걸 '적극 재정'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미래 세대 신용카드깡'**에 가깝습니다. 파티는 지금 즐기되, 계산서는 나중에 태어날 아이들에게 보내겠다는 심산이죠. 시장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이미 2025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된 후, 재정 악화 우려로 일본 국채는 팔리고 엔화 가치는 떨어졌습니다. 정부가 "화끈하게 돈을 풀겠다!"고 선언했지만, 시장은 "이러다 다 같이 망하는 거 아니냐"며 차갑게 식어가는 분위기인 겁니다.
일본의 재정 위기는 단순히 엔화 가치의 롤러코스터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일본 국채 금리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면, 안전자산에 대한 인식이 흔들리면서 글로벌 투자 자금이 급격히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한국 같은 신흥국 시장입니다. 외국인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우리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나라 살림은 위태로워 보이는데, 정작 일본 기업들은 오히려 기록적인 쇼핑에 나서고 있습니다.
두 번째 주제: M&A 광풍과 '하청의 역습', 확 바뀌는 일본 주식회사
나라 살림이 이렇게 위태로운데 왜 일본 기업들은 역대급 쇼핑에 나서는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요. 내수 시장이라는 파이가 더는 커지지 않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살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내부 구조조정을 통해 군살을 뺄 수밖에 없는 겁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일본 기업들이 M&A, 즉 기업 인수합병에 쓴 돈이 무려 33조 엔(약 297조 원)으로, 7년 만의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배경입니다. 이건 일본 기업 생태계의 지도가 새로 그려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주요 외신들이 분석한 세 가지 큰 흐름이 있습니다.
- 해외 성장 투자: 미쓰이스미토모 금융그룹 같은 거대 금융사들이 미국의 항공기 리스 회사를 1조 엔 넘게 주고 사는 등, 해외의 알짜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 그룹 재편: 도요타 자동차 그룹이 핵심 계열사인 도요다자동직기를 인수하는 것처럼, 거대 그룹들이 군살을 빼고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내부 교통정리를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 사모펀드의 비공개화: 미국의 거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기술 인력 파견 회사인 테크노프로HD를 사들여 상장 폐지시킨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키우려는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뭐? (So What?)
이런 M&A 광풍의 진짜 동력은 바로 '시장으로부터의 개혁 압력' 입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주주 가치를 높여라"고 압박하고, 골드만삭스의 한 임원이 짚었듯 "행동주의 펀드 등의 압박이 일본 M&A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씨티그룹증권은 일본의 GDP 대비 M&A 금액 비중이 현재 약 5%에서 수년 내 10%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하청의 역습' 입니다. 과거에는 원청인 대기업(제네콘)의 눈치를 보던 하청업체(서브콘)의 위상이 완전히 역전됐습니다. 지금 일본 건설업계는 일감이 넘쳐나는데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이제는 대기업이 실력 있는 하청업체를 먼저 확보하지 못하면 사업을 따낼 수 없는 시대가 온 겁니다. 수십 년간 '갑'으로 군림하던 대기업들이 이제는 기술 좋은 하청업체 사장님께 "제발 저희 일 좀 맡아주십시오"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겁니다.
이는 한국의 재벌 구조와 대기업-협력사 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여전히 수직적인 관계가 강한 한국과 달리, 시장의 압력과 산업 구조의 변화가 어떻게 기업 간의 역학 관계를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의 체질 개선이 한창인 가운데, 기술 전쟁의 최전선인 반도체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지갑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주제: 메모리 반도체 전쟁의 서막, 내 컴퓨터는 왜 비싸지는가?
시청자들께서 가장 친숙하게 느끼실 분야죠. 바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가격이 심상치 않습니다. 작년 연말 대비 D램 가격이 무려 10배 가까이 폭등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라, AI 시대의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우리 지갑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입니다.
가격이 폭등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제조사들이 PC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일반 D램 대신, AI 서버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 즉 HBM 생산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거대 테크 기업들이 AI 서버용 최고급 한우(HBM)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일반 식당에 나갈 삼겹살(PC용 D램)이 동나버린 겁니다.
이건 일시적인 생산 조정이 아니라 근본적인 전략 전환입니다. 메모리 대기업인 키옥시아 홀딩스는 아예 "수익성과 성장성을 중시해, 데이터센터와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주력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이 줄어드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구칠 수밖에요.
이 여파는 즉각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마우스 컴퓨터, 다이나북 같은 PC 제조사들은 이미 가격 인상을 검토 중입니다. 이런 혼란을 틈타 일본은 과거의 반도체 영광을 되찾기 위한 칼을 갈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와 후지쯔가 손잡고 HBM을 대체할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뛰어들었죠.
그래서 뭐? (So What?)
이 상황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부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기회이자 동시에 엄청난 위협입니다. HBM 시장을 선점하며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것은 분명 기회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두 가지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첫째, HBM에 집중하느라 기존 D램 시장의 지배력을 잃거나 고객사들의 원성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지금의 가격 폭등은 장기적으로 PC와 스마트폰 시장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틈을 일본 같은 경쟁국들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HBM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을 어떻게 차세대 기술과 시장 지배력 유지에 재투자하느냐가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미래를 결정할 겁니다.
첨단 기술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한편, 일본의 시골에서는 아주 원초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멧돼지와의 전쟁입니다.
네 번째 주제: 오늘의 유머 코드, '시빌리언 헌터'의 등장
일본의 농촌 지역은 지금 멧돼지, 곰 같은 야생동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농작물 피해가 막심한데, 정작 이들을 잡아야 할 사냥꾼들은 대부분 고령이라 은퇴하고 있죠. 그런데 이 심각한 문제에 아주 기발한 해결책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시민 사냥꾼'입니다.
이시카와현에서는 지난 10년간 사냥 등록자 수가 86%나 늘었고, 하쿠이시에서는 '노토시시단'이라는 이름의 시민 사냥꾼 조직까지 생겼습니다. 이들의 활동이 재미있는 건, 단순히 멧돼지를 잡아 없애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포획한 멧돼지를 '지비에(Gibier)'라는 이름의 고급 식재료로 가공해 지역 식당에 팔거나, 고향납세 답례품으로 만들어 새로운 수입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나라에서도 못 잡는 멧돼지를 동네 사람들이 잡아다 스테이크로 팔고 있는 셈입니다.
이게 단순히 풀뿌리 운동에만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아예 사냥 면허 소지자를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가바멘토 한타(가버먼트 헌터)'를 모집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공공의 공식적 대응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흥미로운 현상이죠.
그래서 뭐? (So What?)
이 현상은 농촌 소멸, 고령화, 인구 감소라는 일본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민간이 창의적으로 풀어가는 멋진 사례입니다. 정부의 예산이나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비즈니스의 기회로 전환한 거죠. 심각한 사회 문제를 어둡고 무겁게만 다루는 대신, 재치와 비즈니스 마인드로 해결해 나가는 일본 사회의 유연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거대한 예산부터 멧돼지 고기까지, 오늘의 일본 경제는 참 다채롭습니다.
에필로그 (Epilogue)
거대한 국가적 도박과 기발한 민간의 생존 전략이 공존하는 곳. 일본 경제의 내일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입니다.
'조PD의 일본 경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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