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혁신을 낳는 '오픈 아키텍처'...닫힌 일본과 열린 중국, 한국은?
세계 최고의 수학 공식이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수를 한 식에 담아낸 '오일러의 등식'이라는 것인데, 구글 미국 본사 부회장 출신의 무라카미 노리오는 "구글의 모든 것이 이 한 수식으로 표현된다"고 했다. 자연상수와 원주율, 허수단위가 완전히 다른 개념인데도 한 식으로 연결되는 이 신비로운 공식처럼, 기술혁신도 결국 여러 개의 서로 다른 '마음'들이 열린 공간에서 만날 때 시작된다는 뜻인 듯하다.
닛케이 신문이 최근 실은 기사가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엘 모키어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경제 성장의 핵심은 공개된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다. 15세기 활판인쇄, 19세기 철도, 20세기 반도체...모두 사람의 이동을 촉발하고, 정보 접근 비용을 낮춘 것들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혁신이 난다
미국의 아마존과 구글을 보자. 구글은 검색과 스마트폰 같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었고, 아마존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온라인 광장'을 구축했다. 양사 모두 출점자/개발자의 증가가 사용자 증가를 낳고, 이것이 다시 더 많은 출점자/개발자를 유입시키는 정(正)의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시장도 정확히 같은 방정식을 따랐다. 1980~90년대 미국에서 기술 사양을 공개하자, 전자공학도들이 몰려와서 경쟁했고, 그 결과 싼값에 고성능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PC 혁명을 낳았다. 도요타도 토요타 자동차직기, 덴소 같은 계열사들과 '공동개발'을 하고 있지만, 이는 폐쇄적 계열 내에서의 수직통합 방식이다.
중국 BYD의 쇼크, 개발기간 18개월?
이제 자동차 산업을 보자. 중국의 BYD는 신차 개발을 18개월에 한다. 도요타와 현대차를 비롯한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48개월이 표준이다. 무려 3배 차이다. BYD가 이런 속도를 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오픈 아키텍처다. 중국의 200여 개 EV 신생기업들은 배터리, 모터, 반도체를 전문 업체에서 구매해 조립한다. 도요타 같은 일본 업체들은 자신이 모든 부품을 만드는 수직통합 방식을 고집한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이 방식이, 변화무쌍한 EV 시대엔 족쇄가 됐다.
더 놀라운 건 기술력이다. BYD는 5분 만에 400km를 달리는 초고속 충전 기술을 개발했다. 테슬라는 5분에 261km, 현대차는 5분에 100km에 불과하다. BYD의 기술이 테슬라보다 1.5배, 현대차보다 4배 빠르다.
한국, 개방과 폐쇄의 갈림길
여기서 한국의 상황이 흥미롭다. 한국 기업들은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AUTOSAR 같은 국제 표준을 따르고 있다. 이는 일본의 수직통합과 중국의 완전한 개방의 중간 정도다. 현대차그룹은 벤처기업과 협업하는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2018년에는 7건 18개 기업 수준이었으나, 2024년에는 87건 361개 기업으로 20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다. 한국은 여전히 부품사와의 협력 과정에서 대기업 주도의 위계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누가 더 나은 부품을 싼값에 제공하는가'로 순수하게 평가한다. 이 차이가 개발 속도와 원가 경쟁력의 격차로 나타난다.
닫힌 세상은 죽는다
오일러 공식이 아름다운 이유는 서로 다른 영역의 수들을 연결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도 마찬가지다. 톱니가 맞아떨어지는 시계처럼 정교하게 폐쇄된 시스템도 있고, 수천 수만 명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오픈소스 생태계도 있다.
전자는 일관성 있는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후자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다. 자동차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자율주행으로 급변하는 지금, 어느 방식이 더 생존 가능한가는 명확하다.
일본은 이제 깨달았다. 도요타와 마쓰다가 손을 맞잡고 있고, 혼다도 공급업체 재편에 나섰다. 늦었지만 시스템을 열려고 한다. 한국도 여기서 배워야 한다. 오픈이노베이션 숫자는 증가하고 있지만, 진정한 개방성은 아직 멀었다.
닫힌 세상의 효율성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세상에선 닫혀있는 방들보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광장에서 혁신이 터져나온다.
테크 자이언트들이 가르쳐주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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