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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스크랩

거짓도 진짜처럼 보이는 시대, '종이책의 반격'이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이유

by fastcho 2025.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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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도 진짜처럼 보이는 시대, '종이책의 반격'이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이유

요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헷갈리죠. 팩트인지 페이크인지 한눈에 구분이 안 간다고요? 일본의 직목(直木)상 수상 작가이자 최근 도쿄의 인쇄박물관 관장으로 취임한 교극 나츠히코京極夏彦라는 소설가가 최근 일본 닛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딱 집어낸 문제가 바로 이겁니다. 그의 주장은 충격적입니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모두 똑같은 글자 나열로 흐르고 있다"고요.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 한국에선 이미 현실

먼저 상황을 이해하려면 수치를 봐야 합니다. 일본의 종이책 시장은 1996년 최전성기 2조 6,564억 엔에서 2024년 1조 56억 엔으로 무려 28년 만에 62% 급락했거든요. 한국은요? 더 심합니다. 2019년 9,979만 부에서 2023년 7,021만 부로 종이책 발행 부수가 30% 이상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숫자만이 아닙니다.

교극이 경고하는 건 단순히 "책이 안 팔린다"는 게 아니에요. "신경 써서 만든 책과 대충 만든 책의 차이를 더 이상 아무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도 대형 출판사들이 "효율성"을 외치며 책의 종이질, 글씨체, 레이아웃 같은 디테일들을 무시하기 시작했죠. 결국 좋은 책을 만들려는 장인정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종이책은 단순히 정보가 아니라 문화다"

교극의 핵심 주장이 이겁니다. 본인이 직접 실험까지 했대요. 동시에 하드커버, 신서(新書), 문고판, 전자책을 모두 출간했더니 각각의 판매량이 거의 똑같았다고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세상에는 하드커버의 멋진 장정과 종이질을 좋아하는 독자층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과 일본 출판계는 이 사람들을 외면했습니다. 문고판(싼 책)만 밀어붙이다가 이제 전자책까지 나오니까, 결국 "차라리 난 스마트폰으로 보지"가 되어버린 거죠. 슬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경험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감촉, 종이의 냄새, 선명한 글씨... 이런 게 다 사라진다는 건 독서 경험 자체의 죽음이거든요.

도쿄에서 울리고 있는 "인쇄는 마술이다"

재미있는 부분이 나옵니다. 교극이 이렇게 말했어요. "500년 전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기를 만들 때 사람들은 이걸 마술이라고 불렀다"고요. 흑백 글자들이 종이 위에서 살아나는 경험이 그정도로 충격적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어때요? 인쇄는 이미 "된지 오래된 구식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효율 좋고, 저렴하고, 빠르기만 하면 된다고요. 교극은 여기서 대놓고 외칩니다. "인쇄는 아무리 아름다워서 예술(Art)이라고까지 불리는 기술"이라고요.

종이책, 한국에선 정말 죽는 걸까?

놀랍게도 한국 전자책 시장은 연평균 15%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MZ 세대는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게 되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교극이 인쇄박물관의 새로운 관장으로 취임한 이유가 뭘까요? 바로 "미래의 미디어를 이해하려면 과거의 미디어를 이해해야 한다"는 철학 때문입니다. 전자책도, 인터넷도 모두 인쇄 기술의 철학에서 나왔거든요.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에 오히려 종이책의 가치가 더 빛난다는 역설입니다.

한국의 북덕(Book Lover)들은?

한국도 변화가 보입니다. 최근 '휴남동 서점' 같은 감성 서점들이 뜨고 있잖아요. 좋은 장정의 하드커바, 예쁜 글씨체, 신경 써서 고른 종이... 이런 책들이 다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교극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무조건 효율만 추구하면 문화는 죽는다"는 거예요.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 홍수 속에서 우리는 이제 "이 정보는 누가 만들었고, 어떤 정성이 들어갔는가"를 묻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종이의 질감, 글씨의 크기, 여백의 배치 같은 디테일에서 나타난다는 겁니다.

서점에 가서 이번엔 한 번 관심 있게 책의 "외모"를 살펴보세요. 아, 이 책은 정말 정성 들여 만들었겠네... 이런 생각이 들 책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게 바로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계속 손에 들기 시작할 때, 한국의 출판 생태계도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

일본에서 울리고 있는 "인쇄의 반격"이 한국에서도 시작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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