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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만 원 버는 여유도 없는 '케어 노동자'들의 비극, 일본의 철학자가 말하는 '케어 윤리'

by fastcho 2025.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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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만 원 버는 여유도 없는 '케어 노동자'들의 비극, 일본의 철학자가 말하는 '케어 윤리'

아, 정말 좋은 질문이 나왔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약을 훔치는 것이 정당할까? 아니면 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할까?

이 '하인츠의 딜레마'라는 유명한 도덕 철학 문제가 최근 일본에서 다시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노인 돌봄이 당연해지는 고령화 사회에서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제에 대한 남녀의 답변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같은 세상에 사는 다른 종족인 마냥.

정의의 윤리 vs 케어의 윤리, 누가 옳은가?

지난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심리학자 캐롤 길리건은 당시 권위 있던 심리학자 코ール버그의 도덕 발달 단계론에 반기를 들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권리와 규칙을 중시하는 '정의의 윤리'만 강조해왔다는 주장이었다.

길리건의 실험을 보자. 같은 11살 아이들에게 '하인츠의 딜레마'를 물었다.

남자아이 제이크의 답: "인간의 생명은 돈보다 소중하니까, 약을 훔쳐야 한다. 법도 중요하지만 생명이 더 중요하지."

이것이 코ール버그 이론으로는 '도덕 발달의 더 높은 단계'로 평가된다. 보편적 윤리 원칙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여자아이 에이미의 답: "약을 훔치면 안 되지만... 아내를 죽게 놔두면 안 되지? 하지만 하인츠가 감옥에 가면 아내 병은 더 심해질 텐데..."

코ール버그 이론으로는 에이미는 "혼란스럽고 우왕좌왕한 낮은 발달 단계"로 낙인찍혔다. 정말 황당하지 않은가?

길리건은 여기서 깨달았다. 에이미는 개별 권리의 충돌을 보는 게 아니라, 관계 속 다양한 책임들의 갈등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살아가는 그물망 같은 관계성을 고려하면서 말이다.

여성이 '약한' 게 아니라, 남성 중심의 평가 잣대가 문제였던 것이다.

일본도, 한국도 '케어 노동' 지옥에 빠져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길리건이 말하는 '케어의 윤리'가 단순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매우 현실적인 경제 문제와 맞닿아 있다.

현재 일본의 보육사, 요양보호사의 월급은 약 21만 엔(약 200만 원)이다. 반면 전산업 평균 월급은 약 32만 엔(약 300만 원)이다. 차이가 약 10만 엔(약 100만 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 전체 보육사의 대부분이 여성이고, 요양보호사도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것이다. 즉, 케어 노동이 '당연히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순간, 그 임금은 급락한다. 마치 어떤 마법처럼.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요양보호사도 마찬가지로 주로 여성이 담당하는 저임금 직종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에서 월 평균 고령자 간병비는 370만 원인데,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 224만 원의 1.7배에 달한다. 한마디로 못 벌어도 자식들이 이 일은 하라고 강요하는 구조다.

사회가 '관계'를 무시할 때 생기는 재앙들

상지대 단기대학 철학 교수 탄기 히로카즈는 최근 일경에 기고한 글에서 가장 중요한 지적을 했다.

인간은 모두 약하고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누군가의 케어 없이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이것은 남녀 관계없이 모든 인류의 공통 조건이다. 다만 우리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이 기본적 사실을 망각해버렸다.

케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사회적 불평등, 인권침해, 환경파괴... 모두가 '케어의 경시'라는 공통의 병폐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마치 수많은 사건의 밑바닥에 깔린 핵심 원인처럼 말이다.

요즘 일본과 한국의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청년들의 고민이 단순히 금전 문제일까?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케어를 구조적으로 외면했기 때문이다. 보육 시설이 부족하고, 돌봐줄 사람이 없고, 돌봄 노동은 천대받고, 돌봄 노동자의 임금은 형편없다. 이 모든 것이 한국, 일본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정의의 윤리"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우리가 이제 깨달아야 할 때

길리건이 말했듯이, 인간의 성숙은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신과 타인 모두의 필요에 책임감 있게 응하는 것이다.

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법이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 특히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케어'라는 노동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제이크 식의 "정의"가 아니라, 에이미 식의 고민이 필요한 순간이다.

일본 사회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아동 출산 저하, 노령화, 돌봄 인프라의 붕괴...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하나다.

케어는 선택지가 아니라, 생의 기본이다.

케어가 충분할 때는 누가 누구를 돌보는지 느끼지 못한다. 마치 물속의 물고기처럼. 하지만 케어가 부족할 때, 그때서야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었는지.

한국도, 일본도 지금 그 순간에 서 있다.

케어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 보육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 남성도 케어 책임을 나누는 것...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우리가 정말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에 대한 선택이다.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케어의 윤리"가 필요하다.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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