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치의 '70년 위기'…한국과 정확히 반대로 돌고 있다?
자민당 창당 70년, 정치 구도 대변혁의 신호탄
일본 자민당이 지난 11월 15일 창당 70주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축제 같은 축하는 뒤로하고, 당은 존폐 위기를 겪고 있다.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 과반 의석을 잃은 건 자민당 창당 이후 처음이다. 7년간 '일본 1강'을 구축했던 자민당이 한순간에 '여소야대'(여당이 적고 야당이 많은)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이건 단순한 선거 패배가 아니다. 일본 정치 체제 전체가 흔들리는 신호다.
물가 위기와 SNS, 일본 정치를 집어삼키다
패배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보인다. 닛케이 신문은 자민당의 몰락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2배로 뛴 쌀값과 매달 3% 가까이 상승하는 물가. 둘째, "정치와 카네(돈)"이라는 파벌 정치자금 스캔들. 셋째, SNS의 확산으로 인한 유권자의 다원화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세 번째다. 과거 일본 정치는 자민당의 파벌 체계와 관료조직, 기업 간의 '철의 삼각형'으로 돌았다. 그런데 SNS의 등장이 이 게임의 룰을 완전히 바꿔놨다. 24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손취り増'(수령 증가)를 내건 국민민주당이 약진했고, 25년 참의원 선거에선 '일본인 퍼스트'를 외친 참정당이 대약진했다. 특히 20-30대의 투표율이 올라가자 시니어층에 기반한 자민당과 공명당은 순식간에 정치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한국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여기서 흥미로운 비교 포인트가 나타난다. 한국 정치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한국도 2024년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경험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고, 윤석열 정부는 정책 추진에 막혔다. 그런데 한국 야당인 민주당은 SNS 시대를 오히려 잘 활용하고 있다. 특히 물가 문제와 정치 신뢰도 하락 국면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기존 정당 체계를 뛰어넘는 '뉴페이스 결집 효과'를 만들어냈다. 25년 대선에 예상되는 이재명 후보 중심의 진보 연합, 그리고 당내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청년층의 높은 투표율 참여는 한국 정치가 SNS 시대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한국도 '여소야대' 위기를 겪었지만, 이를 넘어선 방식이 일본과 다르다는 게 포인트다. 한국은 기존 정당 체계 안에서 재편을 이루는 '수평적 정치' 변화를 보이고 있는 반면, 일본은 자민당의 독점 구조 자체가 붕괴되는 '수직적 정치' 변화를 경험 중이다.
극우 정치인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의 등장, 일본 정치는 더 어려워진다
더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다. 이시바 총리의 퇴임 후 자민당은 '극우' 정치인 高市早苗(다카이치 사나에)를 총재로 선출했다. 일본 정치 사상 첫 여성 총재라는 타이틀은 진보적으로 보이지만, 다카이치는 강경 보수의 대표주자다. 그는 "워라밸이라는 말을 버리겠다"며 우직한 결의를 드러냈지만, 그 이면에는 강경 우파의 정치 방식이 짙게 드리워 있다.
여기서 한국과의 또 다른 차이가 드러난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 진영이 '여소야대' 위기에 빠지자 대안을 모색하는 방식은 온건화 혹은 '중도 포용 전략'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정반대다. 자민당은 위기 상황에서 강경 우파를 내세워 대오를 재편하려 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일본 정치가 얼마나 보수 진영 내부의 갈등이 심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자, 동시에 "일본 정치의 향후 방향이 정말 불확실하다"는 신호다.
경제 대책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아무튼 자민당의 새로운 지도부는 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을 꺼냈을까? 경제 대책이다. 정부는 17조 엔(약 170조 원) 규모의 경제대책을 내놨다. 전기·가스 요금 월 2,000엔 이상 보조, 소득세 감세(연 1.2조 엔), 가솔린 세금 인하(연 1.5조 엔) 등이다. 반도체·조선·우주항공 등 전략 산업에 관민이 투자하는 '성장 투자'도 강조했다.
물론 대책은 거창하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 정책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차이가 있다. 한국의 야당(민주당)은 '감세'보다 '재정 규율'을 강조하며 8.9조 원 규모의 경제대책을 제시했다. 반면 일본은 '대형 감세'에 무게를 뒀다. 한국 정치에선 재정 건전성 논리가 여전히 강하고, 일본은 적극적 재정출동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정치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모든 경제 대책이 통할까? 아마 아닐 것 같다. 일본 자민당과 한국 민주당의 위기 극복 방식의 차이를 보면, 둘 다 겪는 건 "정치 신뢰의 붕괴"라는 공통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적인 정치 위기를 겪으면서, 기존 보수 진영의 신뢰도가 급락했다. 그 결과 진보 진영이 정치의 주도권을 회복했다. 반면 일본은 부패 스캔들과 물가 위기 속에서 자민당의 신뢰도가 하락했고, 그 결과 정치 구도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
한국 vs 일본, 정치 신뢰 회복의 갈림길
여기서 미래를 전망해보자. 한국은 오는 2025년 조기 대선을 통해 정치 신뢰를 '인물 교체'로 회복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 중심의 새로운 정부 구성이 그것이다. 반면 일본은 다카이치 새 총재라는 여전히 강경 보수적 인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둘의 차이는 명확하다. 한국은 "정치 신뢰의 붕괴 → 정권 교체로 회복"이라는 선형 구조를 따르고 있는 반면, 일본은 "정치 신뢰의 붕괴 → 정당 체계 자체의 재편"이라는 더 복잡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생각
일본 정치를 보며 드는 생각은 '정당 정치의 한계'다. 1955년 자민당이 창당됐을 때는 냉전이 한창이었고, 사회주의 정당을 견제하기 위한 "보수의 대동단결"이 필요했다. 그런데 70년이 지난 지금, 그 '적'이 사라졌다. 정당이 존립해야 할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SNS 시대의 유권자들은 더 이상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적 선택을 요구받지 않는다. 대신 "내 삶이 나아지는가?"라는 실리적 선택을 한다. 일본 자민당의 몰락은 결국 이를 따라가지 못한 기존 정당 정치의 노화를 상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여소야대 위기를 경험하면서도 여전히 기존 양당 체계 내에서 정치 신뢰 회복을 시도 중이다. 이것이 일본보다 나은 길인지, 아니면 같은 함정으로 빠져드는 길인지는 앞으로의 정치 성과가 결정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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